동정녀 마리아께서 마리아의 시대를 여시다

로버트 빌렡 신부 (Rev. Robert J. Billett, C.M.F.)
 
     1830년 7월 18일의 밤은 세계사(世界史)를 바꾼 밤이었다.   그날 밤에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현대의 마리아 시대를 여신 것이다. 그것은 성모님께서 1531 년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이래 약 300년이 지난 후였다.  1830년의 그 밤에 있었던 성모님의 발현 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온 일련의 성모님의 발현들, 기적들 및 교회의 개입들의 시작이었 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우리의 시대는 마리아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위대한 징표 The Great Sign』 #6, p.11, 1967년 5월 13일).


 1830년의 그 밤은 축복받은 밤이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파리의 뤼드박(the Rue du Bac)에 위치한 애덕의 수도회 본원(the Motherhouse of the Sisters of Charity)에 있던 24세의 수련자에게 발현하심으로써 당신의 계획들을 시행하기 시작하셨다.  우리가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Catherine Laboure )라고 알고 있는 이 수련자는 수도원 숙소의 커텐이 쳐져 있는 침실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녀를 조용하게 부르는 수호 천사에 의하여 잠을 깼다.  그녀의 수호 천사는 극도로 아름다운, 5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모습이었으며, 그의 옷은 눈부시게 빛났다.  천사는 그녀에게 "성당으로 가세요. 복되신 동정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말했다.


  천사를 따라 성당으로 가면서 카타리나는 마치 성탄절 전야의 자정 미사를 드릴 때처럼 불들이 환 하게 켜져 있음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제대 가까이 인도되었으며, 수도회의 지도 신부님께서 수녀 들에게 말씀하실 때 앉는 의자 옆에 꿇었다.  갑자기 그녀는 비단 옷 스치는 소리를 들었으며, 지극히 아름다운 부인께서 그녀를 향해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성모님께서는 아이보리 색갈의 드레스를 입으시고 푸른 망토를 걸치셨으며, 흰 색의 베일이 머리를 덮고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성모님께서 는 지도 신부님께서 앉으시던 의자에 앉으셨다. 천사는 카타리나에게 말하였다. "이분이 복되신 동정녀이십니다."  카타리나는 그녀의 양손을 성모님의 무릎 위에 놓고 성모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카타리나에게 주실 사명을 위하여 준비시키시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딸아,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어떤 사명을 맡기시기를 원하신다."  성모님께서는 이어서 카타리나가 그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시련을 겪게 되겠지만, 그 사업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 을 앎으로써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또, 주님께서 그녀와 함께 하실 것이고 그녀를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신뢰심을 가져라.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 사명은 나중에 밝혀질 것이었다.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당신께서 카타리나가 속해 있고, 성 빈첸시오가 설립한 남녀 수도회들을 사랑하시며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고 카타리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수도회 에서 규율을 더 엄격히 지켜야 하며, 기도를 더 열심히 바쳐야 하며, 특히 묵주기도를 중시해야 하며, 세속적인 것들을 줄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프랑스가 겪게 될 재앙들
 성모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현 시대는 악하다.  프랑스에 슬픔이 닥칠 것이며, 왕좌가 전복(顚覆)될 것이다.  십자가가 내던져지 고 짓밟히게 될 것이다.  대주교는 그의 의복을 벗기울 것이다.  거리에는 피가 흐를 것이다. 주님의 옆구리는 다시 찔릴 것이다.  전 세계가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동정녀께서는 슬퍼 보이셨으며, 이 말씀을 겨우 끝내셨다. 그러나, 해결책을 제시해 주시듯이, 제대 아래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제대 아래로 오너라. 여기에서 은총을 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은총이 주어질 것이다. 특히 은총을 구 하는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다가올 다른 슬픔들과 재난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다른 수도회들과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희생자들이 나올 것이다.  파리의 대주교는 살해될 것이 다.  전 세계가 슬픔에 잠길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카타리나에게 이 사건들 중 일부는 곧 일어날 것이고, 나머지는 40년 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성모님의 예언들은 실현되었다. 그 다음 주, 1830년 7월 27일에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났으며, 챨스 10세 국왕이 폐위되었다. 폭도들은 성 당들을 모독하였고, 성상들을 파괴했으며, 십자고상들을 끌어내려 짓밟았다. 주교들과 신부들은 감옥 으로 보내졌으며, 구타당하고, 살해되었다.  파리의 히야신트 드 퀠랑 대주교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 여 두 번이나 피신해야 했다.
 

1848년에 혁명이 또 일어났으며, 루이 필립 왕이 폐위되고 유배되었다.  파리의 아프르 대주교는 바리케이드에 다가가서 평화를 호소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리고 나서 40년 후, 1870년 9월 에 또 다시 프랑스 국왕이 폐위되었다. 루이 나폴레옹 3세 황제가 보불 전쟁에 패하여 폐위된 것이 다.  6개월 후에 파리에서 혁명이 터졌는데, 비록 2개월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그 기간 동안에 성 모님께서 예언하신 슬픔들과 재난들이 발생하였다. 승리의 성모 성당을 비롯하여 파리의 많은 성당 들에 신성모독이 가해졌다.  심지어는 묘지들과 유해들까지도 수난을 당했다.  많은 수도회 및 본당의 신부들이 체포되었으며, 그 중 30명은 처형되었다. 그 중에는 파리의 다르봐 대주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복되신 동정녀께서 약속하신대로, 빈첸시오 수도회들은 비록 수녀들이 공포에 찬 순간들을 거치기는 하였지만 무사하였다.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이런 일들을 1830년에 카타리나에게 알려 주신 후에, 카타리나에게만 관련되는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는, 성모님께서 사라지셨고, 천사 가 카타리나를 다시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천사가 사라지자, 시계가 새벽 2시를 알렸다. 카타리나가 수행해야 할 사명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하느님께서 카타리나에게 맡기신 사명이 밝혀지다
                                           
   하느님께서 카타리나에게 맡기고자 하신 사명이 1830년 11월 27일에 그녀에게 밝혀졌다.
그것은 지금 ‘기적의 메달’이라고 알려져 있는 무염시태(성모님의 원죄없이 잉태되심)의 메달을 만들 어서 전파하는 사명이었다.  그 날은 대림 첫 주일 전의 토요일이었다.  수녀들은 여늬 때처럼 기도드 리기 위하여 오후 5시 30분에 성당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모님께서 카타리나에게 오셨다.
     처음에는 마리아께서 지구 위에 서 계시며, 흰 드레스 위에 발까지 내려오는 긴 흰색 베일을 쓰고 계셨다.  동정녀께서는 당신의 어깨 높이까지 두 손을 들고 계셨으며, 그 손에는 금색의 공이 들려져 있었는데,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는 듯이 두 눈을 하늘로 향하고 계셨다.  성모님의 손가락들에는 찬란 하게 빛나는 보석들로 장식된 반지들이 끼워져 있었는데, 그 보석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빛줄기가 내려와서 성모님 발밑의 지구를 비추었다.  그 빛 때문에 성모님의 발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지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마리아께서 눈을 아래로 향하시어 카타리나를 똑바로 보셨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나, 카타리나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들었다. "네가 보는 이 공은 세계와 특히 프랑스를 뜻하며,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을 뜻한다.  이 빛줄기들은 은총을 청하는 이들에게 내려 주는 은총들을 상징한다.  빛을 발하지 않고 있는 보석들은 사람들이 청하지 않기 때문에 주어지지 않고 있는 은총들을 상징한다."  그리고는 발현의 양상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성모님께서 흰 드레스에 푸른 망토를 두르시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흰색 베일을 쓰셨다. 아직 지구 위에 서 계셨으나, 한쪽 발 로 뱀의 머리를 짓밝고 계셨다. 


지구 위에는 1830이라는 숫자 가 새겨져 있었다. 동정녀께서는 당 신의 두 팔과 손을 아래로 뻗치고 계셨는데, 양손으로부터 폭포와 같은 빛줄기들이 지구 위로 쏟아져 내려왔다.  복되신 동정녀 주위에 금색의 글자들로 구성된 타원형 의 테두리가 생겼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기도문이었다.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지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이것이 제조되어야 할 메달의 앞면이었다. 그리고, 발현은 회전되어 메달의 후면 을 보여 주었다.  카타리나는 십자가를 보았으며, 십자가 밑에 막대기가 있고, 그 막대기에는 "M"자 가 걸려 있으며, 그 밑에는 예수 성심과 마리아의 성심이 있고, 두 성심 위에는 사랑의 불꽃이 있고, 예수 성심은 가시관에 둘러싸여져 있으며, 마리아의 성심은 칼로 찔려져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주위에는 타원형의 테두리를 따라 열두 개의 별들이 있었다.


"네가 본 것과 똑 같은 메달을 만들어라. . ."

    카타리나 수녀는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들었다. 
"네가 본 것과 똑같은 메달을 만들어라. 그것을 지니는 모든 이들이 큰 은총을 받을 것이다. 메달은 목 에 걸어야 한다. 그것을 신뢰심을 가지고 지니는 사람들은 풍성한 은혜를 받을 것이다." 이것이 카타 리나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즉, 이 메달이 만들어지고 배포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1830년과 183 1년에 카타리나가 그녀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6회 정도의 발현이 되풀이 되었다.  그녀는 이 일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메달들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과정에서, 그 다음은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다.  그녀는 1876년에 죽을 때까지 46년 간 자신을 감추고 지냈다. 카타리나는 그녀의 영적 지도자인 쟝 마리 알라델 신부 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자기가 본 발현들이나 자신이 받은 사명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알라델 신부는 1830년에 겨우 30세였으며, 그에게 주어진 임무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신부와 카타리 나 사이에는 1832년에 처음으로 메달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많은 의견 차이들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거의 2년 간 분별을 위한 힘든 노력을 한 후에, 알라델 신부는 1832년에 파리의 히야신트 드 퀠랑 대주교를 방문하여, 카타리나 수녀의 영적지도 신부로서 그녀가 본 환시들과, 메달을 만들라는 복되 신 동정녀의 요청에 대하여 의논드렸다. 주의깊게 듣고 있던 대주교는 자세한 질문들을 한 후, 그 메달을 만들도록 허락해 주었다.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깊은 신심을 가지고 있었던 대주교는 메달이 만들어지면 자신에게 몇 개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1832년 6월 30일, 2,000개의 메달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메달은 기적같이 아주 빠르게 사람들에게 배부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도 그의 책상 위에 있는 십자 고상 밑에 메달을 놓아두었다.  미국에서 티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의 시녀회를 창설한 구속주회 길렡 신부는 1836년에 있은 그의 서품 기념 카드에 메달의 그림을 넣었다.  메달과 연관하여 일어난 치유들과 그 밖의 기적들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메달의 배부가 더욱 가속되었다.  1836년에 바셰뜨사(社)는 수백만 개의 메달을 판매하였다.  파리에 있는 11군데의 조판사들과 리옹 시의 네 군데의 조판사들도 메달에 대한 수요를 채우느라고 다른 업무를 중단해야 할 정도였다. 



메달을 통한 기적들과 교회의 조사


 퀠랑 대주교의 명에 의하여 1836년 2월 11일에 교회의 정식 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의 결론은 메달이 초자연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일어난 기적들은 진정한 것이 었다는 것이었다.  이 조사의 결과에 의거하여, 교황청에서 메달을 기념하는 축일을 제정했으며(1895), 카타리나 수녀의 시복과 시성 조사가 촉진되었다. 퀠랑 대주교는 공개적으로 회개를 거부하고 있었던 도미니끄 드 리옴 드 프롤리악 드 푸르 드 프랕 남작이 임종하면서 회개한 것이 기적의 메달을 통해 서였다고 인정하였다.  남작의 생전에 대주교는 여러 번 그를 만나려고 했으나 매번 거절 당하였 다.  결국 남작이 병석에 누웠을 때 대주교는 기적의 메달을 지니고 그를 찾아갔고, 남작은 은총을 받고 마음이 크게 움직여, 지신의 죄를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았다.  그 다음날, 그는 대주교로부터 병자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한 후 대주교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1837). 기적의 메달을 통한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은 1842년 1월 20일에 있었던 알퐁스 라티스본의 개종이었다.  1월 15일에 그는 친구의 간청을 못 이겨 억지로 기적의 메달을 목에 걸고, Memorare (기억하소서, 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여. . . )기도문을 외우기로 하였다.  그가 그렇게 한 그 날, 1월 20일에 그는 기적의 메달에 묘사된 눈부신 영광에 싸이신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을 보고 완전히 새롭게 변 화되었다.  파트리찌 추기경은 이에 대한 조사를 한 뒤에, 1842년 1월 31일 알퐁스를 교회로 받아 들였다.  그는 추기경으로부터 세례와 견진을 받고 첫 영성체를 했다. 그 후 알퐁스는 사제가 되었으 며, 약 30년 간을 이스라엘 성지에서 그의 백성을 위한 선교사로 일하였다.


임종과 성인 영광

 카타리나 수녀는 1876년 12월 31일에 세상을 떠났다.  1895년에 시복을 위한 청원이 로마에서 받아들여졌으며, 1933년 5월 28일에 시복되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57년이 되던 그 해에 시복을 위한 절차로서 그녀의 유해를 조사해보니 놀랍게도 시신 은 놀랍게도 옷과 몸이 전혀 부패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1947년 7월 27일 성인 품에 오른 카타리나 성녀를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침묵의 성녀'라고 부르셨 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가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기 때문에 성녀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카타리나 성녀는 성모님의 발현을 보고 기적의 메달을 만들어 보급했으며, 그 메달들을 통해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녀를 성녀의 경지로 이르게 만든 것은 그 일들이 아니라 깊은 신앙 안에서 침묵중에 늘 가난한 이들의 종으로서 겸손하게 산 그녀의 삶이었다.

〈Mary’s Touch by Mail에서 발췌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