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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사제들에게 

 


("평화의 모후" 소식지 제68호에서 계속 ) - 스테파노 곱비 신부의 제 2 강론

성령동료 사제 여러분! 성모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도 성모님을 사랑하시지요? 성모님은 그 누구보다도 큰사랑으로 사제들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갖고 계신 그 메시지 책에 서 성모님이 사제들을 어떻게 부르시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사제들을 각별히 사랑 하는 아들들이라고 부르시고 있지요. 그렇다면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나 서 그렇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없어서 그렇습니까? 때로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죄를 짓는 사 람들이지요. 


우리가 성모님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 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그 사제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특유하고 배 타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제라는 직분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봉사자가 되었습니 다. 그리스도는 사제를 통해서 당신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사제를 통해서 행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사제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성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갖는 이 특수한 관계로 말미암아 성모님은 우리 사제들을 더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속주의가 교회 안에까지 들어 온 그 시점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제들이 세상이 하듯이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사제들이 세상의 봉사자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속주의는. 사제라는 존재 전체를 죽여버리는 암과 같은 것입니다. 세속주의라는  암으로인해 미국에서는 3만 명이 넘는 사제들이 사제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직 사제직에 남아 있는 이들도 모습은 세속화된 것이었습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짠맛을 잃은 소금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제들의 세속화로 인해 세계 여러 곳의 신학교들은 거의 비어 있습니다.  성모님은 이런 시점에 처한 우리를 특별한 방법으로 돕고 계십니다. 이러한 위기를 넘길 수 있기 위해서 이 사업을 통하여 우리 사제들을 도우시고자 하십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위기에 처한 당신 아들들을 도와 주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입니다. 성모님이 이 사업을 통해서 사제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당신이 어머니로서 우리 안에서 행동하게 해 달라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열려져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가 되고, 작은 자가 되고,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는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아무런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의탁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갖는 그 신뢰행위가 바로 사제가 성모님께 바칠 봉헌인 것입니다. 지금 성모님은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께 우리가 봉헌할 것을 요 구하고 계십니다. 성모님은 의지가 약한 자로서 혹은 죄인으로 있는 그대로를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에 봉헌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것은 성모님을 통하여…
봉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사제생활을 성모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영성적 차원에서 어머니 마리아의 모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의지 행위로서 마리아를 어머니로서 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제가 "나는 더 이상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겠다" 했다고 합시다. 그들에게 성모님은 마치 두 손이 묶여있는 그 런 모습이 되어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엄마의 역할을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을 원치 않는 사제라면 성모님이 말씀하시더라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그 안에 들어 가시려고 하면  그 사제는 도망가버릴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게 하려면 먼저 우리는 그 분의 모성애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엄마 품에 안겨있는 어린 아이처럼 모든 것을 의탁하고 그분 의 모든 것을 느껴야 합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사제들이 주교님이나 교황님이 될 수는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교황님이 가진 그 문장만은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습니다. 문장에는 "‘Totus Tuus’ 또또스 또" 모든 것은 당신의 것’ 이라는 뜻이지요. 그것은 곧 우리가 성모님께 봉헌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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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성모님은 당신께 봉헌하는 사제들을 통해서 교회를 쇄신시키시고 세계를 구원하려 하십 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봉헌해야 합니까? 봉헌은 아주 간단합니다. 기도문을 가지고 봉헌 기도를 드리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봉헌 후에 우리가 행한 그 봉헌을 우리 삶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봉헌을 생활화하려면 우리는 하나의 여정의 길을 가야 하는데 거기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성모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성모님에 의해서 변모되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성모님과 마음의 친교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마리아 현존의 카리스마를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첫째 단계인 성모님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리아께 봉헌된 사제는 마리아의 동행을 받으며 자기의 사제적 생활을 합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을 만족해합니다. 그는 성모님께서 항상 자기 곁에 와 계시기를 청하지요. 사제가 정말 마리아와 함께 산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입니다. 따라서 그 이야기를 입밖에 내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마리아께 봉헌된 사제다"하고 말할 수 있는데서 벌써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말 많은 사제들이 마리아에 대해서 말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한테 비판이나 받지 않을까 해서 겁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모상은 잘 보이도록 모셔 놓았습니다만 마리아에 대해서 가급적 이야기를 적게 하려고 합니다.


   봉헌의 첫째 결과는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의 삶 속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모님도 함께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또한 성모님은 우리를 도우셔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사도직은 마리아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마리아께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시면 거기에 균형을 잡아 주십니다. 질서를 세워주시고 마음의 평화가 깃들도록 하십니다. 우리 사제들은 평화의 표징들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고통을 받을 때 우리의 격려가 되어 주시고 우리가 혼자만 있지 않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십니다. 정말 우리는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게 모셔 둘 때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제가 된 것이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것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곧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영원한 인호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둘째 단계에 들어갑니다. 
성모님에 의해서 변모되는 단계입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함께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그 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요. 유유상종이라고 할까요. 도둑놈과 같이 다니면 같이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지요. 마약 중독자와 함께 다니면 할 수 없이 마약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덕을 베푸는 자와 함께 다니면 덕을 베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모시고 다닌다면 우 리는 마리아와 같은 모습이 되어 가겠지요. 우리의 삶은 마리아에 의해서 변모되어야 합니다. 마리아의 삶처럼 아름다운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성모님의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내적인 것입 니다. 감추어진 아름다움입니다.

    외양으로는 성모님도 평범한 어머니이십니다. 나사렛 동네 사람들은 마리아를 보았습니다. 마리아는 다른 어머니들처럼 집안을 청소하시고 물을 길으시고 성요셉과 아기 예수에 대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장만하셨습니다. 티 없이 순결하시고 은총이 가득하시고 하느님의 어머니이셨지 만 마리아의 그 모든 아름다움은 내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내적인 면에서 그와 같은 변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언젠가 나는 85세나 되신 한 신부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결한 유혹에 시달렸다고 하시면서 우셨습니다. 85세나 되신 신부님이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신부님 안심하십시오. 불결한 유혹은 육체가 땅속에 묻힐 때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영혼은 하늘나라에 있겠지요." 연약한 우리는 유혹을 당하고 수 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성모님은 우리에게 겸손을 유지시켜 주시기 위해서 그러한 우 리를 그대로 놓아두십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우리를 더 깊은 영성적 차원으로 변모시켜 가십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변화를 가져다 주십니다. 우리의 첫 변화는 정신에서 일어납니다. 마리아의 정신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우리처럼 대학은 못 다녔어도 똑똑하셨지요. 그러나 겸손하셨습니다. 마리아는 항상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 열려 있으셨습니 다. 마리아의 정신은 언제나 성서를 향해서 방향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말씀을 사랑 하시고 묵상하셨으며 그것을 간직하시고 삶에 옮기셨습니다. 그와 같은 삶의 자세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영보의 순간이 왔을 때 "예"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졌던 것입니다. 


여기에 성모님의 모성의 뿌리가 있습니다. 계시된 말씀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성서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당신의 머리 속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말씀이 육화가 된 것입 니다. 따라서 사제들 역시 말씀에 맛들여야 합니다. 성서 특히 복음서를 읽고 묵상하고 그것을 사 랑하고 간직하고 삶에 옮겨야 합니다. 복음서는 문학서가 아닙니다. 생명의 말씀이 들어있는 진리의 책입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성서를 글자 그대로 삶으로 옳긴 복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말씀의 봉사자요 그리스도 복음의 봉사자들입니다. 그럼으로써 참된 신앙의 길을 우리가 걸어 갈 수 있도록 성모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또한 성모님은 우리에게 오류에 대한 거부감과 배척감을 갖게 하십니다. 어떤 오류를 가까이 가서 보면 거기에서 풍기는 악취를 우리는 맡을 수 있 습니다. 그러므로 혐오감을 느껴 그것을 피하게 되지요. 그러한 오류를 어느 대학에서 가르치는 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학자들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복음화 를 심화하는 데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학자가 교도권에 순종할 때만 그렇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신학에 있어서 위대한 역할이지요. 그러나 어느 신학자가 "나는 내 길을 가련다"고 하며 교황님의 말씀을 "그것은 당신의 길" 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학문적 역할을 쓸모 없는 것입 니다. 그들은 신학적 학문의 차원에서는 훌륭한 교수들이지만 신앙의 차원에서는 정말로 멍청이 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많은 학문을 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실한 사제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시대는 우리 사제들에게 위대한 신앙의 증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순교자들의 후예들입니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부정하지 않으면 목을 치겠다는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들처럼 용기를 가지고 신앙을 증언해야 합니다. 오류를 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증언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를 위해 삶을 바치는 사제가 됩시다. 교회는 오늘날 그러한 사제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위해서 성모님은 그러한 사제들을 양성해 내시고 계십니다.



제 3 강론
아기 예수와 성모님성모님은 우리에게 심적 지혜의 선물을 주시고 성서에 맛들이게 하십니다. 복음이 우리의 삶의 빛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복음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그 복음을 정말 우리의 삶에 옮기기 바라십니다. 복음서는 네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다섯째 복음을 발견해 내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제 5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 성모님은 우리의 영혼에 변화를 주십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영혼과 동일하게 되기 위한 변화입니다. 성모님의 영혼은 정말 놀랍도록 아름다우십니다. 그 영혼은 온전히 빛이고 온전히 거룩합니다. 성모님은 일찍이 죄를 한번도 모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어둡게 흐려놓는 것 은 바로 죄입니다. 일단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까만 흑점으로 가득 차 더러워 집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게 은총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은총에 의 해서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사를 집행하는 집전자입니다. 성사는 모두가 은총의 도구 입니다. 우리는 성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성화로 이끌어 갑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 저 은총 안에 살아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성덕의 길을 가야 합니다. 마리아께 봉헌된 사제 라면 죄를 짓고서 죄를 짊어진 채 살 수가 없습니다. 온전히 깨끗한 어머니는 더럽혀진 아이를 그대로 품에 안아주지 않습니다. 깨끗이 씻은 후 안아 주지요.


동료 사제 여러분, 오늘날 우리 교회가 당하고 있는 고통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마리아 성심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사제들이 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 모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사제들이 자주 고백성사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백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이지만 먼저 고백 성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우리 사제들입니다. 예컨대 대학 강단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그 자신이 영어를 모른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은총의 언어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순결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른 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그러한 언어를 할 수 있어야 합 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악으로서의 죄의식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사리 죄를 범 합니다. 또 그것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그것을 다시 고백하지 않습니다. 정말 세계적으로 많은 본당에서 개인적 고백성사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사라지지 않습 니다. 따라서 거기에서 이런 상태가 초래됩니다. 죄를 짓고 죄 속에 머물며 고백성사를 받지 않고 그러한 상태에서 다른 성사도 받고 영성체도 합니다. 죄의 상태에서 영성체를 하는 것은 죄입니 다. 그래서 이 시대는 죄의 독성이 교회에 많이 퍼져 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는 내게 이 교회를 보여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교회가 온갖 부스럼으로 휩싸여 마치 문둥병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 이럴 수가 있 습니까? 교회는 당신의 정배가 아닙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 교회는 나의 정배다. 지극히 내가 사랑하는 정배다. 그러나 교회가 이렇게 추한 모습이 되여 있는 것은 그 독성이 교회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신자들에게 고백성사를 받을 필요성을 강조하고 신자들이 자주 고 백성사를 받을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먼저 자주 고백성사를 받 아야 합니다. 때때로 신부님들이 내게 고백성사를 받으러 옵니다. 그러면 얼마 동안 안 받으 셨냐고 묻지요. 어떤 때는 이런 대답을 듣습니다. 3~4년 동안 안 받았다고요. 한 번은 15년 동 안이나 고백 성사를 안 받으신 신부님도 있었습니다. 일단 우리가 성모님께 봉헌을 하면 성모님 은 우리를 자 주 고백실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둘째는 보다 많은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보존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그것을 구해야 합니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기 도하게 하십니다. 행동하는데 만 맛을 드린 사제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저녁에 잠을 잘 때까지 일에만 몰두합니다. 그들은 성무일도를 바칠 시간도 없습니다. 로사리오를 드릴 시간, 묵상할 시간도 없습니다. 많은 일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제 들은 정말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그런 신세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도직의 목적은 영혼을 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이 구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통해서 구원하시지만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루 종일 기적을 행하고 온 사도들에게 "우리는 무익 한 종입니다."라고 말하게 하십니다. 우리 영혼이 예수께서 행동하시게 하는 그런 영혼이 되지 않 는다면 우리는 어떤 결실도 낼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활동 숨결 자체가 예수 이어야 합니다. 우리 활동 자체는 기도가 불가결합니다. 자동차에서 엔진을 꺼내면 갈 수가 없습 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도는 우리 사도직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없는 사도직은 무익한 것입니다. 많은 일을 한다고 해서 사도직은 아닙니다 우리의 사도직은 영혼을 구하는데 있습니다.


  성모님은 우리를 기도에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모님께 봉헌된 사제라면 성무일도를 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그는 로사리오 기도와 묵상을 잊지 않고 바칩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미사는 그가 하는 일의 중심이 됩니다. 사제의 하루 일과는 미사를 향해 지향되어 있습니다. 미사는 가장 탁월한 희 생제사입니다. 사제는 미사를 생활화합니다. 그는 미사를 위해 고통을 받습니다. 성모님께 대한 봉헌에 의해서 우리는 미사를 드리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성체조배와 로사리오 기도도 배울 수 있습니다. 로사리오 기도를 신자들 특히 여자들이나 바치는 기도로 알고 있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로사리오는 오히려 우리 사제들이 더욱 열심히 바쳐야하는 기도이지요. 
(다음호에 계속 연재됩니다.) 

 
 ( 평화의 모후 선교회에서 발행한 "평화의 모후" 소식지 제69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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