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제가 여기 있어요.”

찬미예수님!
성모님께서 나를 메주고리예로 첫 초대를 하여 주신 4년 전에는, 그래도 내 자신에 기댈 수 있는 무엇이 조금 남아 있기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었다. 그 후 2년여의 더 어려운 나날들을 지내면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자발적으로 메주고리예 순례를 떠났다.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맡긴다 하면서도 나를 짓누르는 현실의 상황들은 공포를 느낄 지경에 이르렀으며, 나의 모든 기도와 신앙생활의 모습이 빈껍데기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2003년 5월 성모님의 달에 열심히 순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몸과 마음이 평화로 가득하였으나, 두 달을 못 넘기고 또 풀리지 않는 일에 근심, 걱정으로 짓눌렸다. 주님께서 매듭 하나만 풀어주시면 모든일이 평화롭게 됨을 알 수 있겠는데 계속 미루고 변명하며 나의 기도는 또 힘을 잃고 말았다.


2003년 말과 2004년 초, 다시 주님께 봉헌하며 목숨을 바치듯 기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메주고리예 순례를 가기로 하고, 남편과 함께 불러주심과 어머니의 그 부르심에 응답드릴 수 있는 은총까지 주심을 감사했다. 특별히 나는 이번 순례에 예수님께서 살아 계심을 온전히 내 안에 담고 싶었다. 순례 일행들의 체험과 변화 기쁨에 함께하며, 나 또한 성모님께서 주시는 한없는 위로와 치유의 눈물로, 내 존재 전체를 봉헌하며 기쁨과 평화가 충만했다. 그리고 돌아와선 모든 사람들에게 메주고리예에서 기다리시는 성모님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순례를 권장하고 나 또한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성체로 매일 우리안에 오시는 예수님의 현존 생활을 새로이 하고자, 현존하시며 항상 기쁨을 주시는 성모님과 하루하루를 함께 하며 지냈다. 그 후부터 계속 이어지는 전례마다 특별한 방법으로 매번 은혜로운 잔치에 초대하시고 기쁨과 깨달음을 새롭게 해주시며 근심과 걱정, 분노 앞에서 성모님께 봉헌하는 짧은 기도에도 평화와 사랑으로 대답해주시는 나날들 이었다.


2004년 성모님의 성월에 또 다시 성모님의 초대를 받았다. 도저히 형편이 안돼는 나에게 한 자매의 전화에서 “자매님, 성모님이 초대하시나 봐요.”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아멘”하고 바로 기쁘게 응답했다. 모든 식구들은 함께 기뻐하며 남은 시간을 열심히 준비하던 중 가까운 이로부터 심장에 비수가 꼽히는 힐책을 들으니 성모님께서 큰 은총으로 기다리심을 믿으면서도 순간 주저하기도 하였었다. 곧 신앙이나 믿음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임을 깨닫고 그분께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못 가게하려는 유감으로 알고 집안 식구들 아무에게도 그 순간의 상처를 나타내지 않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침묵하며 기다리다, 곧 성모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로사리오 성월에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갔다. 생각지도 못했던, 전 날의 비수와 같던 힐책 탓에 더더욱 꼭 예수님의 현존이 내 영혼 깊숙한 곳에 반석되어 주시기를 열심히 열심히 기도드리며, 순례 일정을 잘 따라갔다. 매일매일 성체로 찾아오시는 예수님과 함께하며 성시간 예절 때 쏟아주시는 회개와 기쁨의 은총은 폭포수와 같았다. 또한 같은 일행들의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 기뻐하는 모습은 순례를 더욱 은혜롭게 해주었다. 맨발로 오르는 십자가산의 순례는 주님께서 당신이 흘리신 거룩한 피로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는 죄와 상처들을 깨끗이 씻어주는 정화의 시간이었다.

메주고리예를 떠나는 날을 하루 앞두고 성시간 1시간 전에, 나는 이번에 불러주심에 감사드리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가리라 작정하고 성 야고보 성당의 감실 앞에 조용히 앉았다. 제대 바로 앞바닥은 차가웠지만, 그곳은 열정이 넘치는 한국 아줌마 부대들이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올리는 찬미와 탄원의 자리였다. 아무도 없는 제대 바로 앞에 앉아 조용히 평화의 묵주기도를 바치고 아가서 2장 14절을 천천히 세 번 봉독하였다. 


“바위틈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벼랑에 몸을 숨긴 비둘기여 모습 좀 보여줘요. 목소리 좀 들려줘요. 그 고운 목소리를 그 사랑스런 모습을” 그리곤 예수님께 “예수님 이제 제가 이대로 여기 있어요.”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1분 아니면 2분 정도의 순간이 흐르고 “우르릉.” 땅이 흔들리는 지진에도 나는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힘이 아닌듯하다.) 점점 심해지는 지진에 뒷좌석에 앉아 계시던 몇 분들의 술렁거림이 들리는 듯 하더니 지진의 강도는 다시 사라졌다. 마지막 지진에는 내 마음도 순간적으로 ‘앗’ 할 정도로 강한 지진이었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서 바로 이것이 살아계신 예수님의 응답임을 깨닫고 감사의 눈물로 마지막 날 성시간을 감격속에서 마칠 수 있었다.  


만일 그 시간 내 눈으로 감실에서 살아 걸어 나오시는 예수님이나, 발현 목격증인들이나, 은총을 입은 다른 사람들 처럼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현존을 보았다면 금방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기적을 보고도 눈의 착각이라고 쉽게 단정하려는 우리들을 잘 아시기에 성서의 말씀으로 부탁드린 바위틈과 벼랑에 숨기신 주님 자신을 땅을 흔들어 나타내 보이시고 우렁찬 소리로 응답하심으로써 “하늘은 나의 옥좌요, 땅은 당신의 발판”임을 나타내 보여 주시고 내가 어느곳에 가던지 나와 함께 걸어가심을 알려주셨다.


다음 날 아침,  남 그레고리오 형제님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한 후에, 주님께서 영원히 잊지못할 현존체험이 내 마음속 깊이 각인되었다. “내가 여기 있다. 네가 항상 원하기만 하면 성체로 네 안에 매일 찾아가서 너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 네 안에서” 준주성범 제 3권 43장 1~4항에서 말씀하시듯이 “어떤 사람에게는 표와 모습으로 기쁘게 나를 드러내주고” 또 어떤 성인의 말씀처럼 “세밀한 연구에서 보다 모든 것을 버리는데서 진보하였다.” 하신 말씀을 이루어주셨다.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나날들을 모두 마칠 때 까지, 모든 게으름과 어두음을 이기고 성덕을 쌓으며 살아계신 나의 주님을 매일 모시며 노력하며 그분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련다. 오늘도 2000년전의 희생을 재현하시며 감실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나의 사랑 예수님을 자주 찾아뵙고 그분의 작은 기쁨이 되고자 노력하련다. “그들이 기도를 마치자 모여 있던 곳이 흔들리고 사람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서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 (사도행전 4장 31절) 
성모님 감사합니다. 하늘과 땅의 왕이신 예수님 감사 찬미 받으소서. 아멘!


2004년 12월 평화의 모후 선교회 발행 "메주고리예' 제24호 체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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