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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성모님!


- 이영찬 신부 <예수회, 성모공동체 지도신부> 


성모님, 성모님, 어느 누구보다도 부르고 싶고 달려가고 싶은 어머니,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느님의 평화와 기쁨안에 살기를 원하시는 성모님! 이 세상에 사실 때부터 하느님의 구원의 도구로 많은 고생을 하시고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구원의 도구로서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나타나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힘쓰시는 성모님! 


천국에 오르셔서도 우리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에게 애원하시는 성모님! 

무엇이 아쉬워 그렇게도 죄인들을 위해 수고하신단 말씀입니까? 저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이유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당신께서 사랑으로 주시는 말씀을 듣고도 돌아서면 제대로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89년 5월 25일 당신께서는, “나는 너희들이 하느님 안에만 있으며 하느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과 사랑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 천상기쁨과 사랑에는 관심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찾을 생각도 하지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기쁨, 즐거움, 인간적인 사랑에 몰두해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에 온 정신이 다 팔려 있습니다. 


천상기쁨이 무엇일까? 이것을 진지하게 자문하며 찾는 사람은 참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물질적 기쁨(좋은 물건들을 갖고싶은 욕구), 육체적 기쁨(맛있는 것, 편한 것, 자극적인 것, 쾌락적인 것 등등)과 심리적인 기쁨(성취하려는 욕구, 인정받으려는 욕구, 남들과 즐겁고 싶은 욕구, 지배해보고 싶은 욕구, 모성애, 부성애 등등) 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욕구들을 지배하고 극복하려 하기 보다는 그러한 욕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모님! 그러한 인간적인 행복보다도 영적인 행복, 하느님안에만 있고 하느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행복, 기쁨과 영적인 행복, 천상행복, 초월적 행복 등등 무엇이라고 표현하던 이러한 행복을 얻으려 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마굿간에서 구세주를 낳으신 성모님! 

  당신은 마굿간이라는 짐승이 사는 곳에서 구세주를 낳으셨습니다. 어느 여인네 같았으면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비탄에 빠져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한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불행한 상태에서 당신은 천상환희에 차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기쁨을 누리셨습니다. 이 세상 형편과는 상관없이 천상기쁨을 누리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합니까? 마굿간이 아니라 조금만 불편해도 짜증을 내고, 물질적으로 조금만 빈궁하거나, 육체적으로 아프거나, 심리적으로 상처를 조금만 받아도 괴로워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모님! 

참으로 묵주의 환희의 신비 3단, “성모님 예수님 낳으심을 묵상합시다.”를 우리 아무리 묵상해도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묵상해도 우리는 세상적으로 조금만 힘들어도 견디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들어도 돌아서서 잊어버리고 비탄에 빠지게 됩니다. 성모님! 저희의 머리와 마음에 마굿간에서 당신이 누리셨던 천상 기쁨을 심어주소서.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오, 아름다우신 성모님! 기도하고 단식하며 성서를 읽고 성사생활을 하라고 부탁하시는 성모님! 저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찾기 보다는 현실의 빵과 욕구들에 눈이 멀어 세상 행복부터 찾게 됩니다. 기도와 단식은 특히 마귀를 쫓아 내어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들에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들 중에는 좋은 영들도 있지만 나쁜 영들도 있습니다. 

그 나쁜 영들 중의 하나가 마귀인데 이것은 예수님의 힘으로만이 쫓아낼 수 있습니다. 기도와 단식은 우리의 인간적인 욕심을 최소화 시키는 것을 뜻하며 영혼이 맑아지는 효과가 있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잘 오시게 되고, 반대로 안 좋은 영은 쫓겨납니다. 기도하고 단식하면 저희에게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혜를 주겠다고 약속하신 성모님! 우리가 당신께 의지하고 묵주기도와 단식을 통하여 하느님안에, 하느님의 기쁨 안에 살게하여 주소서. 


메주고리예에서 저에게 무엇보다도 감명 깊었던 것은 체나콜로 공동체였습니다.

알콜과 마약으로 찌들은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새로운 빛 안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 중독자들의 수호천사 역할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성모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약한 한 수녀를 통해 성모님께서 일하셨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여러 나라에 30여개 이상의 재활 공동체가 설립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알콜과 마약 중독자들에게 어떤 의약도 쓰지않고 오직 사랑의 묘약만으로 그들을 새 사람이 되게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말이 쉽지 어떻게 그럴수가 있나요? 중독자들을 사랑만으로 일으키신다는 것은 도구 없이 집을 짓는 행위와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한마음으로 작은이들을 특히 사랑하시는 성모님! 

당신은 저희가 작은이들을 돌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마더 데레사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몽당연필이 되어 온전히 의탁하는 마음으로 달려들면 그러한 중독자들을 위해서도 구원의 수호천사 역할을 우리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문제는 온전히 제물로 자신을 바치려는 믿음의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주고리예를 다녀와서 더욱 검소한 삶을 살려하고 더욱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살려는 마음이 많아지기를 염원하였습니다. 메주고리예의 야고보 성당에서의 묵주기도 십오단과 평화를 위한 매일 미사 봉헌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온 순례객들이 함께 모여 매 단마다 지도 신부들이 자기나라말로 성모송을 인도하는 모습은 아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물론 저도 한국말로 성모송을 한 단 주송하였습니다만 서로를 인정해 주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보였습니다.


메주고리예 순례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많이 알게 되었고 서로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하는지를 알고 기도해 주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각자가 나름대로의 십자가를 지고 메주고리예에 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없애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십자가를 잘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도 발현산과 십자가산을 올라갈 때 순례단과 함께 기도하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눈물의 원인이 무엇인지 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여튼 은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의 죄에 대한 통회의 눈물이기를 바라며 또한 예수님의 고통을 아파하는 눈물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의 십자가가 힘들어서 나오는 눈물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도 이스라엘 여인들을 위로하셨듯이 나도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로하는 사제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제는 정말 각자의 위치에서 성모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길 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성모님 사랑합니다. 


  (평화의 모후 선교회 발행 '메주고리예' 소식지 제14호 목자의 소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