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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생명체는 무릇 때가 되면 자기 존재의 뿌리로 돌아간다마치 나뭇잎이 떨어지면 흙으로 되돌아가듯이,우리도 언젠가는 우리 존재의 마지막 포홍자이신 하느님께 돌아가리라돌아간다는 것은특별히 마음을 들어 돌아가다는 것은 종교적인 표현이다마음을 들어 돌아간다는 것은 목숨을 들어 존재의 근거자이신 하느님께 귀의(歸依)하는 것이요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께로 귀명(歸命)하는 것이다

 

영적합리화는 우리의 느낌이나 사고를 억누르면서몸이 따라주지도 않는데 신앙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행위이다예로서 어떤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불구자가 되었다앞에서 달려오던 음주 운전자가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일어난 사고이다한평생 불구자로 살아야 되는 그 사람이자기는 열심한 신자이기에(아니면 자기는 수도자이기에), 자기에게 덮쳐온 재난을 무조건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이려 할 수 있다아직은 불구자가 되었다는 비극적 사실을 받아들일 상태가 아닌데도 "주님당신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하고 서둘러 말하는 경우이다이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기보다는 너무 빨리 영성화시키는 것이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가만약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또 다른 운전자가 술에 취해 중앙선을 넘어와 그의 자녀를 죽여도 하느님의 뜻일까유사한 질문도 수도없이 나올 것이다인간의 사악함과 탐욕으로 인해 일어난 비극이 하느님의 뜻일 수 있겠는가유괴살육전쟁으로 인한 고통이 하느님의 뜻일 수 있겠는가유독성과 발암성 물질을 방류하면서 자연과 인간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일 수 있겠는가만약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우리는 영적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하느님의 뜻은 인간과 세상을 돌보시는 것이지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병들고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영적 합리화는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내 고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이기에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조심해야 할 일이다말하자면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참고 견디세요다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하시고요"라고 한다든가 알코올 중독에 걸린 남자가 하루가 멀다하고 살림을 때려부수며 아내를 구타하는데아내 되는 사람더러 "신앙으로 참아 견디세요한다면그것은 신앙을 빙자한 합리화일 수 있다

 

영적합리화는 언뜻 보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느님 뜻을 거부하게 만든다자기 안에 있는 고통스런 느낌들을 대면하기 보다는 외면하게 만듦으로써 자기와의 단절이 이루어지고자기와의 단절은 하느님과의 단절에까지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격한 감정이 억누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억누르면 억누를 수록 파괴적 방향으로 힘이 뭉쳐서 어느 순간에 폭발하게 된다. "참 신앙인이라면 모름지기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을 틀린 말이다신앙이나 절대 진리를 들먹거리면서 직면해야 될 아픔이나 갈등을 덮어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꼬이거나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할 때 차분한 마음보다는 정직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세분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하느님의 뜻은 의도적인 뜻상황적인 뜻궁극적인 뜻으로 나뉘어 진다술에 취한 운전자에 의해서 벌어진 비극적 재난은 하느님의 의도적인 뜻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하느님의 의도적인 뜻은모름지기 생명체에게 은총과 사랑을 넘치도록 주어 충만한 생과 자기 완성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하느님의 상황적 뜻이다하느님은인간의 무지와 사악함에 의해서 어떤 불행한 일이 생겨났을 때그러한 비극적 상황하에서도 재난 중에 있는 인간을 돌보려 하신다하느님의 상황적인 뜻은어떤 비극적 처지에도 인간과 세상을 돌보겠다는 굳은 의지이다고통 중에 있는 신앙인들이 찾아야 될 하느님의 뜻은 바로 이 뜻, '하느님의 상황적인 뜻'이다술 취한 운전자에 의해서 한평생 불구가자가 된 것이 하느님의 의도적인 뜻이 아니지만그런 비극 속에서도 하느님의 상황적인 뜻을 찾는 것이 신자다 된 도리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궁극적 뜻이다이 뜻은 바오로 사도가 말하였듯이모든 것이 종극적으로 선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드는 하느님의 의지이다(로마 8,28). 아무리 어둠의 세력이 극성을 부려도 빛의 세력을 물리칠 수 없다우리에게 닥쳐온 어떤 비극도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궁극적인 뜻을 거부할 수는 없다하느님은 우리가 겪는 어떤 체험 세계에서도 궁극적으로 우리 영혼을 구원과 영원(永遠)으로 이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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