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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 '주님 탄생 예고', 12세기 초, 산 마르코 성당 모자이크 일부, 베네치아

 ● 환희의 신비 1단 :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기쁜 소식, 순종,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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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탄생 예고'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방문해 예수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대목을 그린다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예고한 지 반년이 되자 가브리엘 천사는 나자렛으로 가서 요셉의 약혼자 마리아에게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을 낳을 것이고,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아기는 성령이 내려와 잉태될 것이고,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친척 엘리사벳도 이미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됐음을 일러줬다. 이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하고 대답한다. 마찬가지로 천사는 요셉에게 가서 약혼자가 임신한 것을 알리고, 그에게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0-22)하고 알렸다

 루카 복음서는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의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님 탄생 예고' 도상에 나타나는 기본적 세 요소는 천사와 마리아, 마리아를 향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령의 비둘기다. 그러나 황금색으로 배경을 가득 채운 이 모자이크 작품에서는 성령의 비둘기는 보이지 않고, 하늘의 천사와 우물 가까이에 있는 마리아만이 보인다.
 
 #축복을 주는 천사

 작품 왼쪽 위에는 하느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표현돼 있다. 천사의 오른손은 전형적인 축복의 동작으로 마리아를 가리키고 있다. 천사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하고 말하며, 마리아를 '복된 여인'이라 지칭한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가 세 살이 돼 젖을 떼자 안나와 요아킴은 제물과 함께 딸 마리아를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다른 동정녀들과 함께 성전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마리아는 성전에서 거룩함 속에 착실하게 성장하는데, 천사들 보호 아래서 하느님의 환상을 즐기며 거룩하게 지냈다. 마리아는 동틀 무렵에서 오전 9시 전후까지 기도,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내지 3시까지 천 짜는 일, 그 이후부터는 천사가 나타나 음식을 가져다 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했다고 한다. 마리아는 성전에서 기도하고 말씀 안에서 일하며 살았으며, 이어 요셉의 신부로 혼인 약속을 한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성장한 마리아에게 성전에서의 생활은 실로 커다란 하느님 역사를 준비하라는 과정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놀란 동정녀 마리아

 그림 중앙에는 작은 주전자를 들고 있는 마리아가 있다. 천사의 인사에 마리아는 놀란 표정이다. 처음에는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뒤를 돌아보고서야 비로소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사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많은 화가는 '주님 탄생 예고' 장면 중 마리아를 표현하는 데 있어, 마리아가 기도하고 있을 때 천사가 알렸다고 간주하고 책과 함께 마리아를 나타내곤 했다. 그래서 미술가들은 시편을 손에 든 마리아를 그렸다. 마리아의 자세는 주님 말씀을 들으며 주님과 교감을 나누는 동작으로 그려졌으며, 무릎 위에는 책이 올려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성경 본문에는 단지 천사의 인사만이 언급돼 있을 뿐 마리아의 동작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이 모자이크 작품은 '주님 탄생 예고' 내용을 기도 중인 모습이 아니라 물을 길어 우물로 향하는 모습으로 그려 비잔틴적인 특성을 보인다. 비잔틴 도상의 경우를 보면, 천사는 마리아에게 두 단계로 출현한다. 먼저 천사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말하고, 이어 마리아가 집에서 성전을 위해 자색 베일을 짜는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나타난다. 첫 장면은 동방의 사막 지역에서 물이 갖는 중요성을 드러낸 것이고, 두 번째로 마리아가 자주색 실을 길게 잡고 있는 도상은 새로운 이브의 역할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원죄 후에 실을 짜는 것으로 죄 값을 치르는 운명을 뜻한다.

 이 모자이크의 '주님 탄생 예고'는 비잔틴적 전통 도상을 토대로 우물가에서 생각지도 않은 인사와 함께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28-30)하고 말하는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놀라고 걱정스러워하는 마리아를 묘사한다

 하지만 마리아는 놀라움과 동시에 경배의 몸짓으로 무릎을 굽히고 있다. 이미 마리아의 머리 위에는 그리스어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새겨져 있는 것이 확인된다

 #나자렛의 집

 루카 복음사가는 '주님 탄생 예고' 이야기의 배경을 갈릴래아의 산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작은 고을 나자렛으로 설정한다. 성경 본문에서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루카 1,28)는 문장의 '들어가다'라는 표현은 천사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으로, 마리아가 집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추정하게 한다
 서양에서 '주님 탄생 예고' 도상은 일반적으로 왼쪽에 천사가 있고 오른쪽에 마리아가 있어 양쪽으로 분리되는 장면이 보편적이나, 때로는 마리아 집을 실내나 실외로 설정해 전체적 주제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때도 있다. 실외는 나자렛 고을이나 집 대문 아래를 배경으로 하는 반면에 실내를 배경으로 할 때에는 건축 구조를 두 공간으로 나누기도 했다. 여기서 한 공간은 천상 세계로 천사를 배치하고, 또 다른 공간은 지상 세계로 마리아를 배치하곤 했다. 이 모자이크는 '주님 탄생 예고' 장면을 조금 특별하게 묘사하고 있다. 장면은 실외로 나자렛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묘사한다.
 
 #작은 주전자

 마리아는 손에 이미 물을 담은 듯 손잡이가 달린 작은 주전자를 쥐고 있다. 이 물 주전자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둥근 형태의 주전자는 바로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시킨다. 주전자가 물을 담는데 사용되는 것처럼, 마리아도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할 것이다"는 말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하고 말하며, 하느님 말씀에 겸손하게 ""하고 순종으로 받아들인다
 
 #우물과 녹색 나무

 작품 오른쪽에 상당히 단순하게 표현된 우물이 있다. 마을과 좀 떨어져 있는 우물은 집이나 동물들에게 사용할 물을 그곳에서 퍼올리기 위해서 팠다. 따라서 우물은 마을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지나던 길손이 목을 축이기 위해 머물고, 새로운 소식이나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우물은 서로에 대해 알고 가족 간에 혼인을 성사시킬 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모세와 그의 아내, 야곱과 라헬, 이사악과 레베카가 혼인했을 때도 우물이라는 장소가 등장한다

 이 작품 역시 우물이라는 장소에서 이뤄지는 마리아와 천사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계약을 성사시키려 한다. 사실 마리아는 요셉과 혼인을 하게 되지만 마리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아들을 잉태한다. '봉해진 우물'(아가 4,12), '정원의 샘 생수가 솟는 우물'(아가 4,15)이라고도 불리는 마리아는 풍요롭고 순결한 모성을 의미한다.

 우물 옆에는 녹색 나무 한 그루가 단단하게 우뚝 솟아 있다. 시들지 않은 이 나무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하와는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생명나무 선악과를 따먹어 하느님 뜻을 거역했고, 마리아는 하느님 뜻을 전하는 천사의 말에 그대로 순종한다. 하와는 하느님 말씀을 거역해 인류에게 죽음을 초래했지만, 마리아는 순명해 인류를 구원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옛 계약'은 무너졌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또 나무 뿌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는 우물이 파진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성경에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2-3)는 구절처럼,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나무처럼 전혀 물의 부족함이 없어 나뭇잎들은 항상 푸르고 전혀 시들지 않으며 언제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삶이다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 인천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교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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