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경향 돋보기] 역사 안에 나타난 성모 발현과 메시지
 
옥현진 시몬 신부(광주 가톨릭대학교 교수)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대다수는, 가톨릭교회의 신자들이 하느님을 믿기보다 마리아를 믿는다고 알고 있다. 심지어 일부 개신교회에서는 “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는 ‘마리아교’”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또한 성당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성모상 앞에 머리 숙여 절하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라며 비판한다.
 
이러한 오해를 피하려고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일찍이 성인들이나 성모 곧 사람에게 드리는 공경을 하느님 흠숭과 구별하였다. 구약의 성경말씀에 따르면 우상숭배나 미신적 행위에 대한 금지(탈출 20,4; 레위 26,1)는 신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였다. 그런데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이 가시적 인간의 모습을 갖춘 이후로 모상 금지는 더 이상 구약시대의 의미를 갖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초대교회는 모상 사용을 오랫동안 경고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초상보다는 상징을 택하였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교리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성화상 공경에 대해 적대감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더욱이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흐른다고 하면, 이에 대해 타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어 직접 메시지를 남긴 현실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해서 단순한 질문들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안에 나타난 성모 발현과 메시지를 알아보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발현의 주된 메시지는 회개와 기도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시대적으로 살펴보자.
 
 
역사 안에 나타난 성모 발현과 메시지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 : 1531129일부터 12일까지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멕시코 원주민 성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하셨다. 성전을 지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징표로 카스틸라 장미 한 다발을 보내셨다. 한겨울 테페약산 꼭대기에 피어난 장미를 후안은 망토 앞자락에 고이 담아 주교와 둘러선 사람들 앞에 펼쳤다. 꽃들이 흘러내린 망토에는 발현하신 성모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선교된 지 8년 만에 멕시코에서는 800만 명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 미신과 우상숭배 의식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기적의 메달 성모 발현 : 1830년 프랑스 뤼뒤박의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에게 발현하신 ‘기적의 메달’ 성모님은 718일 발현하셨을 때 “이 시대의 악과 불행이 닥칠 것인데 제단에 모여 은총을 구하는 사람은 은총을 받을 것이다.”라는 내용을 전하였다.
 
라 살레트의 성모 발현 : 1846919일 토요일에 프랑스 남부 라 살레트의 산기슭에서 메라니 칼바트(15세 소녀)와 막시민 지로드(11세 소년) 두 어린이에게 발현하셨다. 이날은 성모 칠고 축일 전날이었다. 성모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만일 나의 백성이 순명하지 않는다면, 나는 성자의 손을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고 하셨다. 성모님께서는 두 어린이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관해서도 물으시고 아침 · 저녁기도를 잘 드리도록 권고하셨다.
 
루르드의 성모 발현 :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소도시 루르드에서 1858211일부터 716일까지 18번에 걸쳐 성녀 베르나데타 수비루에게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발현하시어 “회개하여라. 죄인을 위해 기도하여라. 죄인의 회개를 위한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어라.”,  “사제들에게 전해 이곳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게 하고 이곳에 성당을 짓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타르브 교구장 로랑스 주교는 성모 발현에 대한 진위를 파악하고자 조사에 착수하였는데, 그의 증언과 기도와 회개운동 그리고 많은 치유 기적에 근거하여 1862118일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퐁멩의 성모 발현 : 1871117일 프랑스 퐁멩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외젠느(12)와 요셉(11)이라는 소년들에게 발현하셨다. 당시 프랑스는 프러시아와 전쟁 중이었다. 두 소년은 군대에 간 형 아우구스티노를 위해 미사참례와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저녁하늘을 쳐다보다가, 별이 반짝이는 짙은 하늘색 옷을 입고 있는 부인을 보았다. 성모님은 “나의 어린이들아, 언제나 기도하여라! 하느님께서 너희의 기도를 곧 들어 주시리라! 나의 아들은 너희의 기도를 즐겨 허락하신다.”고 하셨다. 면밀한 조사 끝에 187222일 위카르트 주교님은 이 발현을 공식 인정하였다.
 
녹의 성모 발현 : 1879821일 성모몽소승천(성모승천대축일) 8(팔일축제) 전야였다. 이날 저녁 730분경에 아일랜드의 마요 마을(현재는 녹이라 부른다) 성당 남쪽 벽에서 발현하셨다. 이 발현은 두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다섯 명이 목격하였다. 비가 쏟아지는 저녁이었으나 발현하신 모습은 전혀 젖지 않으신 채였다. 메시지가 없는 발현이었지만 녹은 지금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930일에 이 성지를 방문하여 성모 발현 백주년을 기념하였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 : 1917513일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포르투갈 레이리아 교구 코바 다 이리아에서 루치아와 그의 나이 어린 사촌동생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에게 발현하셨다. “매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시며 “매달 13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발현은 613일과 713일에도 일어났다. 네 번째 발현일인 813일에는 지방 당국으로부터 방해를 받아 코바 다 이리아로 가지 못했으나, 19일에 성모님을 만났다. 913, 성모님은 전쟁이 끝나도록 로사리오(묵주기도)를 바치라고 이르셨다.
 
끝으로 1013일 성모님은 당신을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알려주시고,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다시금 이르셨다. 그날 놀라운 천상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태양이 빙빙 돌면서 하늘에서 떨어져 처박히는 듯한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3만 명의 군중이 어린이 주변에 몰려 있다가 이 신비한 현상을 목격하였다. 코바 다 이리아에서 어린이들이 본 환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301013일이었다. 레이리아의 주교는 오랫동안 조사하고 검토한 뒤에 코바 다 이리아에서 로사리오의 성모 공경을 허가했다. 발현은 보았으나 말씀은 듣지 못했던 프란치스코는 191944일에 선종했고, 동생 히야친타는 1920220일에 하느님 품에 안겼으며, 루치아는 수도자가 되었는데 얼마 전에 선종하였다.
 
보랭의 성모 발현 : 19321129일부터 이듬해 13일까지 벨기에의 브와쟁 집안의 페르낭드, 질베르트, 알베르와 드장브르 집안의 앙드레, 질베르트 등 다섯 명의 어린이들에게 30차례에 걸쳐서 발현하셨다. 1932128일 이후, 성모님의 발현은 모두 매일 저녁 6-10시 사이에 계속되었는데, 이때 발현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1221일에 성모님은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녀이다.” 하고 말씀하셨고 1231일에는 성모성심을 표지로 보여주셨다. 193313일에는 다섯 명의 어린이들에게 개별적으로 그들의 생애에 관한 것을 알려주셨으며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킬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늘의 여왕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하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발현은 끝났다. 1934년 구성된 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마치고 1943219일 나뮈를 교구장 샤뤼 주교에 의해 공식적인 보랭의 성모 마리아 공경이 허락되었다.
 
바뇌의 성모 발현 : 바뇌는 벨기에의 고원지대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1933115일부터 32일 사이에 성모 마리아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로 바뇌에 사는 소녀 마리에트(12)에게 8번 나타나셨다. 가난을 내세우시는 성모님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유물론에 치우친 물질 위주의 삶에서 하느님의 신앙을 저버리고 있는 위기를 일깨워주셨다. 치유와 회개의 기적을 일으키는 루베네의 아르덴 고원의 바뇌도 1949년 성지로 공식 발표되었다.
 
암스테르담의 성모 발현 : 1945325일부터 1959531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모든 민족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발현하셨다. 1996531일 암스테르담 하아르렘의 주교 보메스 몬시뇰은 당시 보좌주교 푼트 몬시뇰과 함께 성모님을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공경할 것을 공식적으로 허락했다.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 내린 미국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를 반대하여 마리아 공경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사실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를 반대하고 비판하였지만 그 자신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큰 사람이었다. 아무튼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반이성주의와 초자연적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끼며 마리아 신심을 더욱 옹호하였다. 또한 성모 발현이라는 기적 현상은 이러한 대중 신심을 더욱 자극시켰다. 이러한 가운데 과장된 마리아 신심 행위가 프로테스탄트를 비롯한 반마리아주의자들에게 비난할 구실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시작한 베이사이드 성모신심에 의문이 생겨, 전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님이 미국의 교구장에게 질문을 던져 답변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답변의 내용은 이러하다. “존경하올 나 주교님, 주교님께서 문의하신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에 대해 도움이 되어 드리고자 그 자료들을 동봉하여 드립니다. 성모 발현에 대해 저희 교구에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한 바 그 신빙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브루클린 교구의 공식적이고 확정적인 입장은 이른바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교님께서는 저희 브루클린 교구의 공식적인 견해를 널리 공표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와 유사한 예가 한국에서도 있다. 상주의 황 데레사는 탈혼 상태에서 천주 성삼과 성모님과 천사들과 천당, 연옥, 지옥을 보았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일들을 자신의 여러 책을 통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성모신심을 잘못 이끌고 있다. 또한 나주 윤 율리아는 자신이 소유한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하여 성체의 기적까지 이뤄졌고 자신을 통해 신비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회의 일치를 깨거나 불순명으로 나아가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다
 
이처럼 교회사 안에서도 여러 번 성모 발현이 있어왔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앞에 서술한 그동안 역사 안에서 검증된 성모님 발현은, 발현의 목격자를 위한 것뿐 아니라, 전체 교회를 위한 메시지를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발현에 대해서 교구장들은 복음적 가치를 기준으로 진실성과 항구성 그리고 신앙의 유익함 등을 점검해 보고 신앙인들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지역교구에서 조사위원회를 거쳐 신앙적인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무엇보다 신앙의 여인이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 신앙의 응답은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열정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전형이 되고 있다. 사실 마리아의 모든 특은은 이 신앙의 응답에서 시작된다. 이를 근거로 성모님의 발현이 교회의 일치를 깨거나 불순명으로 나아가는 것은 참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늘날 피눈물 흘리는 성모라든지, 성모 발현 등을 다루는 내용들은 가시적인 기적이나 기이한 현상에 중점을 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과장된 선전을 하거나 성역화 작업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역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우에는 로마교회에 조사를 요구하거나 지역교회의 교도권과 가르침에 순명하지 않고 자신들의 과장된 주장들을 관철시키려 한다.
 
교회는 그릇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들을 건전한 신앙으로 되돌아오도록 계도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또한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목자들이나 수도자들의 명확한 신앙관과 올바른 신심이 우선적으로 요구됨을 절감한다.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말씀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옥현진 시몬 신부 -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교 교회사 박사. 광주 교회사 연구소 소장이며, 광주 가톨릭 대학교 교수이다.


Virgin_of_Guadalupe.jpg



bot_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