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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연옥 교리



<길선주 목사(새벽기도 창시자)의 외손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체험담>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저자 : 김 안토니오

 


온 세상이 뉴 밀레니엄이라고 떠드는 해의 8그러니까 연중21주일의 아침6시경 눈을 뜨고 삼종 기 도와 아침기도를 마치고 나서 평소와 다름없이 짤막한 영적 독서를 하였는데이때 나는 지난 40여년간 정말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의 집필을 이제야 허락하시는 것으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너희 시대만큼 “짖지 않는 개” 로 전락한 목자들의 수가 많았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그들은 자신들에 게 맡겨진 양떼가 약탈자인 수 많은 이리들(마태 7, 15)에게 속아넘어가 잡아먹힐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킬 줄 모른다그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이 토막토막 난도질 당하거나 찢기고 있다오류와 이단과 악 한 표양이 홍수처럼 만연하고 있건만 단호히 언급할 의무가 있는 자들의 무관심과 타협으로 말미암아 무 거운 침묵만 흐르고 있으니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라는 구절로 현재 전 세계 수 백명 이상의 주교님들과 십여만명 이상의 사제들과 함께 "마리아 사제운동(Marian Movement of Pries ts)"을 선도적으로 이끄시는 "스테파노 곱비신부님의 성모님과의 내적담화 형식으로 된 한국어판 1185 쪽의 일부였습니다.

 

실은 나는 내 주님이 내게 주신 은총의 선물인 가톨릭신자가 되기 이전 20년 간은 개신교그러니까 장 로교파의 친가외가의 두 할머니 권사님과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셨던 집사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으며개 신교에서 세례를 받았고개신교신자로 교육받았으며대학1학년까지는 개신교 청소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하느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 그리고 그분에게 대한 두려움을 배웠고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심과 돌아가심과 그분의 부활 하심을 배웠습니다또 성서가 하느님의 거룩하신 말씀임을 배웠고 이를 존중하는 것을 배웠습니다나는 개신교에서 매우 열심한 훌륭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그분들의 강의도 들을 수 있었으며성실한 많은 분들의 희생하시는 삶도 보아왔습니다이 시기는 참으로 나의 인생에서 퍽 유익한 시기였으며나 에게 많은 선익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열심하면 할수록 공허해지고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마음의 평화와 항구한 기쁨 그리고 구원에 대한 자신감은 멀어져만 갔습니다때문에 나는 그 당시 신앙의 유일한 규범인 성서를 더욱 열심히 탐독하게 되었고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구절을매일 수십 번을 되뇌며대학에 가서는 전공과목대신 도서관에서 종교서적 탐독에만 몰두 하기 거의 만1년여 끝에 나는 드디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나는 나의 신앙의 양심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어야 했으며드디어 주님께서는 이 좋은 선물을 허락하셨습니다.

과연 주님은 진정 당신을 찾는 자의 바로 곁에 계셨습니다.   쓰고자 하는 글이 바로 이것입니다사실 천주교로 회심한 직후부터 여러 차례 그 동기와 과정을 글로 옮겨보려 했으나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하여 오랫동안 미루어오다가또 최근에는 모처럼 활발히 일고 있는 교회일치 운동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하여,  그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었을 따름이었으나한번은 펜을 들어야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지금에서야 허락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겸손 되이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은 한 개인의 진솔한 신앙체험기일 뿐이며어느 특정종교나 교파를 비난하거나 헐뜯는 글이 아님을 미리 밝혀둡니다.

내가 자라고 좋게 키워진 곳을 향해돌을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다만 아직도 많은 나의 친구 동료들이 장성하여 국내외 개신교의 평신도집사장로 또는 목회자로 활동 하고 있으나유독 가톨릭에 대한 오해와 편견만은내가 고교시절 갖고 있었던 것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 지 않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다소나마그들의 오해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소망과더욱 이 젊은 학창시절 그 당시 천주교를 믿던 친구들에게 “우상 숭배자!” “마리아 신봉자!” “교황의 추종자” 등 독설을 퍼부으며그들을 경원시 하였던 나의 잘못을 지금에서나마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조차 알길 없는 친구들에게)공개 사과라도 해야겠다는 뜻에서 이 글을 씁니다.

 

또한 이 글이 행여 옛날 젊었을 때의 나와 같은 처지에,서 더 확실한 진리추구를 위해 갈등하고 그 영혼 을 위한 고민과 간절한 기도로 애쓰시는 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더 바랄 수 없는 영광과 보람 으로 여길 것입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글은 이 손자가 왜 가톨릭으로 회심했는지를 모르고 일찍 세상을 떠나신 두분의 할머니와 그렇게도 반대하셨던 어머니(이 아가다)와 조건부로 나의 회심(개종)을 지원하셨던 아버지 (요한)의 영혼을 기억하면서 이 글을 자모이신 성교회에 바칩니다.

 

개신교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연옥 교리 개신교에서 제1경전만 인정하다 보니 또 하나의 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16세기까지 보편적으로 믿어 오던 연옥교리가 갑자기 없어진 것입니다연옥이란 영원한 복을 누리는 천국과 악인들이 영원한 벌을 받는 지옥과의 사이에 중간 장소 또는 형태로서작은 죄를 지은 상태로 죽은 사람이나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주님의 공의를 완전히 보상하지 못하고 돌아간 영혼들이 정화되어 승천할 때까지단련을 받게 되는 곳을 연옥이라고 합니다.

 

흔히들 개신교 형제들은 연옥은 성경에 없는 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그 교리가 들어 있는 구약성서 마카베오서 상하권을 모두 없애 버렸으니 성서에는 찾아 볼 수도 없으며신약에서도 여러 곳에 암시되어 있으나이를 구구각각 자유 해석을 하고 있음으로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생각해 보십시오여기 예수를 믿던 어떤 사람이 병상에서 잠시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화를 냈거나남의 흉을 보며 욕을 했거나예를들어 “바보 또는 미친놈“이라고 하며 눈을 흘기다가 죽었다면이영혼이 즉시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요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신념으로 왜 못 가느 냐고 반문할 것입니다흔히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바보 또는 미친놈이라고 하는 말을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미친놈” 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비록 예수를 믿었다고 하더라도이는 예수 님께서 성경에 직접 말씀하신 대로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마태 5,22) 수밖에 없으며“바보” 라고 욕한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마태 5,22)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 5,22).” 즉 천국은 아무리 작은 죄라도 하느님의 신성이 이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또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성서에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부정한 것은 그 무엇도역겨운 짓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그 누구도 도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 21,27)

 

비록 그 죽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생명의 책에 자기 이름이 올라 있다고 굳게 믿고천국행을 확신했을 지는 몰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그의 소망일 뿐이지 확약된 사항은 아닙니다왜냐하면 하느님의 공의 (公儀)가 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비록 소죄 투성이의 영혼일지라도 육신을 떠난 그 순간즉시 하느님 앞에 나아가 결백한 천사들의 대열에 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또 어떤 이는 죽기 전에 죄사함 다 받고 왔다고 항변할지는 모르나 그 사람이 죄사함 다 받았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그는 자기가 하느님으로 착각하는 것뿐입니다아니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을 뿐입니다그렇다고 소죄를 가진 영혼이 간음자나 살인자들과 같이 지옥 불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옳은 것은 아닙니다이 또한 하느님의 공의(公義)와 인자(仁慈)가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건전한 상식 판단으로라도 일종의 중간 처소나 상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성서 말씀대로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자기의 공적대로 갚아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순결하고 착한 사람에게는 천국 영복을 주시고 흉악한 죄인에게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주시며작은 죄만 있는 영혼에게는 연옥 잔벌을 주시는 것입니다이것은 신약성서에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나는 너의 각 사람에게 자기 행적대로 갚아 주기 위하여 상을 가지고 가겠다”( 22, 12).

“만일 그 기초 위에 세운 집이 그 불을 견디어 내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고  만일 그 집이 불에 타 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 속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Ⅰ고린토 3,14-15)."

 

 이와같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불 속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서 이 지상에 살아 있는 우리는 기도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이것이 곧 “사도신경” 나오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우리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개신교의 사도신경에 "모든 성도의 교통함을 믿으며와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산 자들의 교통"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죽은 영혼들까지 포함하는 통공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 연옥교리는 구약성경 (2마카 12, 41~45) 사이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으며유다 민족이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희생 봉사하던 것은 역사적 문서로도 충분히 인정되는 사실입니다개신교에서는 마카베오서를 빼어 버렸으니여기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그들은 숨겨진 일들을 모두 드러내시는 의로운 주님의 찬양하였다 (2 마카 12, 41). 그리고 죽은 자들이 범한 죄를 모두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2 마카 12, 42). 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그가 이와 같이 숭고한 일을 한 것은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마카 12, 43)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허사이고 무 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2 마카 12, 44)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자 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2 마카 12, 45)

 

 그러나 16세기의 소위 종교 개혁자들은 이 구절 속에 대사 문제가 함축되어 있고 이것을 소위 면제부 사건으로 끌고 가려면 이 성서의 몇 구절을 바꾸어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판단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되 무엄하게도 마카베오서 모두를 성서에서 없애 버렸습니다그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음 험한 자가 반대편의 증인을 암살하듯이 예수님의 기적으로 부활한 나자로를 살해하여 예수의 전능의 증 거를 없애 버리려던 당시 유다인의 심술과도 같다” 는 혹평을 받고 있습니다마카베오서는 다른 성서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인 정경입니다원래 정경위경 판정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직접 교회에 주신 권위로 서만이 판정되는 것입니다.이것은 구약시대에도 그랬거니와 신약시대에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주전 150년이래 약1700여 년을 정경으로 인정해 오던 이 성경을 소위 종교개혁이란 이름 하에 모인 몇 사람이 자기들 마음대로 떼어버림에 대한 배반과 모순은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교회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몇몇 사람이 세운 교회를 우리로 하여금 식별케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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