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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기자의 명작 속 하느님 (3) 부활 -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와 산상수훈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 부르는 연설은 예수의 말씀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이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서>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설교를 기록한 부분인데 ‘산상설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도덕적인 삶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대변하고 있는 부분이다. 내용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처럼 “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팔복(八福)으로 시작한다.

그다음에 일정한 형식의 연설이 이어진다. “누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유명한 구절도 여기에 나온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통송하는 주기도문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참된 신앙생활의 내면적 본질에 관한 가르침이 짤막한 비유로 제시되고 있는 산상수훈은 오랫동안 가톨릭 수도생활의 전형적 규범으로 자리 잡아왔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는 이 산상수훈을 기본 골격으로 자신의 철학적 토대를 완성했다. 도덕적 무소유, 무저항주의 등으로 대변되는 톨스토이즘은 인간 톨스토이의 삶을 보여 주는 단서이면서 그의 문학을 분석할 때 꼭 필요한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톨스토이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펴내며 명성을 누리던 무렵까지 톨스토이는 부족한 것이 없는 작가였다. 그러나 40대 중반부터 불현듯 찾아온 삶에 대한 회의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1880년 이후 그는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기독교적 인간애를 근간으로 하는 톨스토이즘을 체계화한다. 1899년 발표된 <부활>은 예술가이자 사상가인 후반기 톨스토이의 내면이 가장 뚜렷하게 살아 있는 작품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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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창녀 카투샤가 법정에 출정하기 위해 교도소 감방을 나서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카투샤는 어머니가 죽자 지주에게 맡겨져 자란다. 그녀는 18세가 되던 해 지주의 조카인 젊은 공작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된다. 공작이 떠나버린 후 카투사는 주인집을 나와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살아가다 창녀로 전락한다. 그리고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법정에 배심원으로 나온 사람 중에는 카투샤의 운명을 나락으로 빠뜨린 장본인 네흘루도프가 있었다. 법정에서 카투샤를 본 네흘루도프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워하다 다음날 감옥으로 그녀를 찾아가 용서를 빈다. 하지만 지난날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투사는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네흘루도프는 과거에는 양심을 저버리고 그녀를 버렸지만 이번만큼은 끝까지 양심에 충실하리라 맹세한다. 네흘루도프는 카투샤를 구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그녀는 결국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되고 네흘루도프는 열차에 올라 카투샤를 따라 시베리아로 간다.

카투샤는 수용소에서 만난 정치범 시몬스에게서 청혼을 받게 되고 이것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카투샤는 시몬스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자기로 인해 네흘루도프의 인생이 망가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네흘루도프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속마음을 감추고 카투샤는 말한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말아 달라.”. 그러면서 폐병으로 죽어가는 한 정치범을 돌보는 것을 선택한다.

네흘류도프는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전 인류를 구하는 것과 같은 것임을 깨닫는다. 네흘루도프는 그가 애독하던 신약 속 ‘산상수훈’의 사상에서 깊은 영향을 받고, 인류의 구원은 사실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계율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네플류도프는 결국 그녀를 시몬스에게 보내기로 하고, 자기는 다른 고통 받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리스도의 교훈을 실천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기로 한 네흘루도프의 마음은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게 된다.


톨스토이의 신념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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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저자 톨스토이는 자신의 저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기독교 예술, 즉 현대의 예술은 본래의 의미에서 가톨릭적, 그러니까 전 세계적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만인을 결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만인을 결합시키는 데는 두 종류의 감정밖에는 없다. 하나는 인간은 누구나 다 신의 아들이고 똑같은 동포라는 자각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기쁨 감격 활기 평안 같은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이며 누구에게든지 받아들여지는 감정이다. 이 두 종류의 감정만이 내용면으로 훌륭한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소설 <부활>은 톨스토이의 종교적 사상이 완벽하게 반영된 작품이다. 작가의 영성과 하느님의 말씀이 결합해 탄생한 위대한 인류의 고전이다. 종교적 신념은 소설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양심을 선택하기로 한 네흘루도프는 이렇게 독백한다.

비록 이로 인하여 무슨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나를 구속하고 있는 이 허위를 깨뜨려 버리리라.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실행하자. 나는 비열한 사나이로 지금까지 거짓으로 살아 왔다고 말을 하자. 유산도 진실에 따라 처분하자. 그리고 그녀 카투샤에게 나는 비열한 사나이로 당신에겐 죄 지은 인간이다. 앞으로 당신이 짊어질 운명을 덜어주기 위하여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하자. 그렇다. 그녀를 만나 용서를 구하자. 어린애가 잘못을 빌듯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자.”

이렇게 외친 다음 네흘루도프는 곧이어 신께 용서를 구한다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제 마음 속에 깃들어 저의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 주십시오.”

자기 마음속에 찾아와 온갖 더러움을 씻어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네흘루도프의 모습은 어쩌면 젊은 날의 방탕함을 후회하는 톨스토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 쾌락에 굴복한 삶을 살았고 이로 인한 처절한 환멸과 자괴감에 괴로워했다. 이런 모순 속에서 톨스토이의 사상과 문학은 탄생했다. 톨스토이는 부활의 원동력을 산상수훈의 교훈에서 찾고 있다. 네흘루도프는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인생 최대 행복으로 가는 부활이라고 믿었다.

톨스토이가 소설 <부활>을 통해 외치고 있는 것은 명쾌하다. 인간은 모두 어쩔 수 없는 죄인이며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원한 인류의 고전 <부활>

톨스토이의 <부활>은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읽힌다.



로맹 롤랑은 <부활>을 ‘예술적 성경’이라 칭했고, 일본 유명 감독 미조구치 겐지는 <부활>을 모든 멜로드라마의 원형이라고 했다. E. M. 포스터는 어떤 영국 소설가도 톨스토이만큼 위대하지 않다고 했고, 춘원 이광수는 중학교 시절 읽었던 <부활>을 자신의 문학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꼽았다. 미당 서정주도 <부활>에서 창작의 원천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모든 모순을 뛰어넘어 영혼의 부활을 꿈꾸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지금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완성하기까지는 십 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기간 톨스토이는 두 남녀 주인공의 문제뿐만 아니라 당대 러시아의 사회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들까지 작품 속에 흡수시키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 때문에 <부활>은 종교적 작품인 동시에 짙은 사회성을 담고 있는 참여적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주인공 네흘루도프는 새로운 삶을 결심하는 동안 타락과 향락에 젖은 귀족들의 삶과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의 삶 사이의 모순을 인식하게 되는데, 톨스토이는 주인공의 언행을 빌려 당대의 대중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도덕적 결단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주인공을 등장시킨 것도 대중을 겨냥한 계몽을 염두에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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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자신이 목격한 그 모든 참상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그것을 척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야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가 여태 찾지 못한 해답은 바로 예수가 베드로에게 준 해답과 같은 것이었다. 항상 모든 이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 타인을 벌하고 교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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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45(2014년 가을), 허연 바오로(매일경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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