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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박어거스틴 몬시뇰과 십자가

2015.10.02 19:18

평화 조회 수:8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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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 때문에  참 많이 행복했어요." 
- 김학선 -
                                                                                                                                                              
                                                                                             

박 신부님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제 (9월 18일 ) 오후 4 시 40 분 쯤이라고 했다.  
박신부님은 나에게는 영적인 아버지 같으신 분이다.  
ME 발표 부부로서 첫 주말을 박신부님과 했다. 
주말 내내 그 포근하고 행복했던 기분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솥뚜껑 같은 큰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셨던 기억. 
내 손을 잡으셨지만 내 영혼이 그 분 안에서 쉬는 것 같이 안락하고 평화로왔다. 
20년도 더 전에 박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그 분을 통해 느꼈기에  
박신부님은 하느님과 나 사이를 연결해주는 특별한 존재로 늘 생각했다. 
이젠 하느님의 품에 안겨  내가 그랬던 것처럼 평화롭게 쉬셨으면 좋겠다.  
공인이라 늘 신부님이라고 불렀지만 마음 속으로는 아버지라고 불렀던 신부님
오늘은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 곁에 계신는 동안 아버지 때문에  참 많이 행복했어요." 



사제들이 진 십자가가 얼마나 무겁길래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런 부탁을 하셨을까?

박어거스틴 몬시뇰과 십자가 
                            
                                                                                                                                                                                                김형기 스테파노 

교통사고로 장기간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집에서 무료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박어거스틴 몬시뇰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이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데 스테파노씨가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그날이 바로 2006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었다. 뜻밖에 전화를 받으니 반갑기도 했지만, 빨리 건강을 회복하도록 기도하겠다는 말씀이 참 고마웠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오랫 동안 성당에 다닌 내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잘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매일 미사 책을 들여다보았더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9월 14일로 날짜가 고정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런데 몬시뇰께서 왜 하필이면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나를 생각했을까? 아마 내가 진 십자가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비교해 보고 어떤 깨달음을 얻으라고 하신 것 같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도 찾아오셔서 십자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무릎에서 잘린 왼쪽 다리, 그리고 쇠막대기로 가로세로 묶어놓은, 뼈가 여덟 토막 난 오른쪽 다리를 물끄러미 보고 십자가 얘기를 했다. 동행한 Y 씨에게 “이 쇠막대기들 좀 봐. 십자가 모양이잖아.” 그러고 거기에 십자성호를 그었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조지 워싱턴 브리지라 같다고 생각하며 엄청난 무게를 느꼈는데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작은 십자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거 알고 보니 엄청난 다리(bridge)가 아니고 조그만 십자가잖아.” 그날부터 애써 그걸 가벼운 십자가로 생각하려 했다. 몬시뇰의 뜻은 상한 다리를 볼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라는 것이었나 보다. 

그날 병실을 떠나며 그분은, “스테파노씨, 죄 많은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날부터 퇴원할 때까지 사제들을 위해 자주 기도하기는 했지만, 주님이 내 기도를 얼마나 들어 주셨을까? 사제들이 진 십자가가 얼마나 무겁길래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런 부탁을 하셨을까? 아마 많은 분들에게도 같은 부탁을 하셨을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그분은 여러 번 병원과 집을 방문하여 위로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며 내가 진 작은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 주려고 애쓰셨지만, 나는 그분의 십자가를 가볍게 해 드린 적이 없다. 

해마다 그러 했듯이 올해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도 그분이 생각나서 알아보니 병원에 입원했는데 회복이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 후에 병원에 가보았더니 기력이 매우 떨어져서 눈을 힘겹게 뜨셨다. 그 모습을 보더니 같이 방문한 베드로씨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신부님, 제가 맛있는 걸 대접해 드릴 수 있게 빨리 일어나세요.” 
“신부님, 꼭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드려야 하는데 어서 일어나셔야지요.” 
그러면서 그는 계속 눈물을 닦았다. 나는 감정이 북받쳐서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가 뵙고 온 지 이틀 후, 그러니까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나흘 후에 그분은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앞으로도 해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맞으면 그분이 생각날 것이다. 

몬시뇰님, 이제는 무거운 십자가는 내려놓으시고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으소서. 
주님,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 28).”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소서.   (2015년 9월 29일)

< http://www.ilovesak.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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