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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의 위기

세상은 변한다. 그것도 급변한다. 서구의 사상, 특히 합리주의와 개인주의 사상이 우리 문화 속에 깊이 들어오면서 달라졌다. 삼종지도(三從之道)나 여필종부(女必從夫)와 같은 말은 이미 사어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남편을 잃으면 수절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지만, 이제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경제발전과 함께 먹고 입을 것이 충분해지자, 이제는 질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러한 현세지향적 행복추구는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돈과 쾌락을 좇는다.

특히 경제지상주의와 현세적 쾌락주의는 개인의 성공과 명예를 얻으려고 동료를 짓밟고 자기 행복의 도구로 삼기까지 한다. 윤리적 판단 기준도 자기중심적이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이라는 회칙에서 이 시대의 위기 가운데 하나로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지적하셨다. 교회 밖은 물론 교회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개인주의까지 신앙의 힘으로 투쟁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왜 그런가? 개인주의가 과연 나쁜 것인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인격(person)’에 대한 발견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는 인류의 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의 발견이다.

내가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이용당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가진 것이 없다고, 못났다고, 무능하다고 하여 나의 인격이 무시당할 때 얼마나 괴로운가? 개인주의는 개인의 인격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는 사상이다. 긍정적 의미에서 개인주의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의해 더 큰 힘을 얻는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사회에서 소외된 세리와 함께 먹고 마셨으며,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부랑아, 나병환자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치유해 주셨다. 빛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가족조차 볼 수 없는 눈먼 사람들에게 빛을 주셨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며, 악령에게 사로잡혀 자기 의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영’을 부어주시며 치유해 주셨다.

상처 받은 사람,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살아갈 희망조차 잃은 사람 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도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이요,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행적으로 이렇듯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하느님의 사랑을 계시해 주셨다. 예수님의 개인에 대한 철저한 사랑은 참으로 우선이고 복음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릇된 개인주의가 있다. 자신의 소중함만을 생각하고 이웃을 업신여기거나 심지어 자기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여기는 행동, 이웃의 인격을 파괴하고 죽음으로 모는 행동, 함께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에 무관심한 행동 등은 개인주의 본연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사랑받고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자신이 소중한 만큼 이웃과 공동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릇된 개인주의, 이기주의에 빠진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분명히 구별된다. 그리스도교는 개인주의를 존중하고 옹호한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개인 인격의 소중한 가치가 인류에 드러났다. 개인주의는 이러한 계시된 진리를 인간이 발견하고 발전시킨 한 예이다.

그러나 이기주의,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이기주의는 지나친 개인주의를 넘어 그릇된 것이다.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웃과 사회와 인류 공동체를 배제시키는 배타적 개인주의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립된다.

그래서 교황님은 이러한 ‘개인주의’를 이 시대의 도전으로 인식하고 대항하신다. 교황님이 지적하신 그릇된 개인주의는 병적인 개인주의, 이기주의적 삶의 태도, 지나친 개인 중심주의, 교회 안에서 봉사하지 않으려는 나태함, 개인주의적 영성으로 말미암은 이웃에 대한 무관심, 사회적 책임의 회피 등이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개인주의적 영성

구원과 관련하여 개인주의 문제를 살펴보자. 그리스도교 신앙은 개인의 구원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단순히 하느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라는 것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느님 나라’이고, ‘하느님의 다스림’이다.

하느님 나라는 공동체적 특성이 있다. 이 하느님 나라는 이미 현세에서 시작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든 이가 하나 되는 공동체적 완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가 제시하는 구원은 이렇듯 인격적이고 개인적일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이다.

인류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는 다만 하느님께서 한 인간이 되셨다는 개별 사건이 아니다. 교부들은 이 강생의 신비를 하느님께서 “인류 전체와 한 몸을 이루신 것”(성 힐라리오)으로 이해하고 가르친다. 예수님의 죽음도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사건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한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이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사회적 특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소중한 인격체로서 개인의 구원을 위해 죄를 용서해 주시고, 악령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며,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을 치유해주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요한 1,29), “세상의 구원자”(요한 4,42)로 묘사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모든 이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동안 감추어두셨던 하느님의 계획이 드러났다고 고백하며, 그 심오한 계획이란 바로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에페 1,10)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웃과 세상의 구원을 배제한 가운데 자신의 구원만을 추구한다든지, 이 세상 일에는 관심이 없고 사후의 세상, 곧 내세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근본 신앙과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현세의 가치만을 좇거나 개인의 구원에만, 그리고 현세의 복에만 집착하는 것도 진정한 가톨릭 신앙이 아니다. 이는 기복신앙과 초월적인 것을 부정하는 자연주의신앙에 빠지는 것이다.


개인주의를 극복하려면

오늘날 개인주의의 도전과 위기 앞에서 우리는 ‘참신앙’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머리로 인정하고, 일상을 착하게 사는 것만이 믿음이 아니다. 일상의 순간순간, 새롭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다가오는 하느님의 뜻에 직면하여 자기를 온전히 버리는 일이다. 하느님의 말씀 앞에, 하느님의 뜻 앞에,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포기하는 것,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 개인주의의 위기 앞에서 오늘날 선교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여 세례를 베풀고 교회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다. 오늘날 요구되는 선교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 곧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음의 확장은 사람의 숫자도 아니고, 번듯한 제도도 아니며, 쓸 수 있는 자원이 많은 것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수행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물들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물들고, 이웃과 사회를 향해 그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복음화의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개인주의를 극복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믿는다.

*
곽진상 제르마노 – 수원교구 신부. 1993년 사제품을 받고,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기초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연구와 후학양성에 헌신하고 있다. 여러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으며, 2014년에는 앙리 드 뤼박 추기경의 「그리스도교 신비사상과 인간」을 번역, 출판하였다.

[
경향잡지, 2015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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