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1-십자가.jpg

 

만일 사람이 세상을 다 얻고도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하느님의 말씀 듣기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현존 가운데 살아가는 방법중 하나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깨닫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교류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그분께서 선택하신  방법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장 완벽한 안내자를 잃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언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가?  항상 말씀하신다.  특히 기도 중에 말씀하신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지 독백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들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대화를 잘 이끄는 사람은 듣기도 잘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기도문을 재빠르게 산만한 상태로 읽어 치운다면 잘 하는 기도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마치 하느님이 듣기만 하는 분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하느님께서 교류하시는 방법인 우리의 생각과 바램에 귀 기울이지 않느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들이 너희 하느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그가 보기에 바르게 살며 그 명령을 귀에 담아 모든 규칙을 지키면, 에집트인 들에게 내렸던 어떤 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아니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불행히도 우리들 대부분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훈련을  거의 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려면 하느님께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 그분의 계명을 깨닫고 그 분께 복종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가?  하느님은 순수한 영이시다.  우리와는 달리 그분은 목소리가  없으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원하실때는 외부의 다른 방법을 사용하신다.  우리의 본성에 맞추어 여러 방법을 사용하셔서 생각을 교류하신다.  때로는 우리가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상상력을 움직이시거나  혹은 직접 우리의 생각 안으로 들어오실 때도 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신다.

 

자 그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말씀하신다고?   그것을 어찌 의심하겠는가?   온갖 종류의 서적을 읽고도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성서는 어떤 특정 구룹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의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영원하시다.  그분의 말씀도  영원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셨지만 ,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다.

 

 모든 사람들에게 성서를 자신에게 맞게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오직 교회만이 성서의 올바른 해석으로써 우리를  안내할  성스러운  권한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에게 성서를  읽도록 권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에 들어오면  하느님께서 당신만의 신비로운 방법으로 우리의 삶이  진리의 길로 가도록  가르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삶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사랑의 길이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는 자신이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말씀을 읽으며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만일 사람이 세상을 다 얻고도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러나 그것이 기도인지 묻는다면  최소한  기도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 ; 그것을 묵상한다;  우리의 생각을 일깨우고 자신안에서 바램을 일으킨다.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의지는 영감을 받아 고취되고 열렬한 사랑으로 나아가 그리스도께 도움을 청하고, 용서를 청하고, 감사를 하고, 작은 찬미의 행위를 한다. -  그리고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바오로 사도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난 것과 같은  환시나, 발현, 계시등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는 등의 전형적인 예를 듣곤 한다.  그리고 성녀 마가렛 마리 알라코퀘의 삶에 대해 읽을 때,  예수님께서 자주 기도중에 성녀에게   당신의 성심에 대한 신심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야기등을  읽는다. 

 

 성인들의 삶에서 하느님과의 그러한 대화는 그리 희귀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느님과의 대화에 있어서  예수님이 나타나고 천상의 소리를 듣고, 특이한 발현이나 계시들을 받을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물론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몇 영혼을 선택 하셔서  직접 말씀을 하시고 그들의 영혼안에서  고귀한  능력을  체험케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적은 숫자이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로 사용하시는 방법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한다.  환시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성장시키는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그러한  특별한 계시가 없더라도 하느님의 현존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하느님과의  깊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위의 것들은 하느님 뜻이 있으실 때, 그러한 뜻에 따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은이다.   

 

2-기도.jpg 


 하느님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예외없이 방금 말하였던  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생각과 바램으로 직접 들어오신다.  우리의 가장 숨겨진 비밀도 그분께는 비밀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곧바로 우리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므로 우리의 생각은 우리 자신의 생각만이 아니며  우리의 바램도 우리 자신만의 바램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생각이나 바램일 수 도 있다.  우리는 하느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먹고, 숨쉬고 걷는 것과 같이 평범한 것조차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평범함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한 자연적인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부터  더 큰것, 더 고귀한 것들도 그분의 도움임을 알수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선한 생각을 하거나  거룩한 일들을 하려는 바램을 갖도록 특별한 방법으로 도우시는가?    정말 그렇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과정안에  살고 있고 초자연적인 결과인 천상복락의 비젼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것을 얻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생명의 원칙을 주셨을 뿐 아니라 성화의 은총도 주셨다.  또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실제적인 은총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 하느님의 은총안에서 성장한다.   이 실제적인 은총이란 특히 거룩한 생각과 바램들로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때 우리안에 불어 넣어 주신 그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말씀이나 싸인을 주시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생각을 불어 넣어 주시며,   우리의 마음안에 직접 들어오신다.  소리없이 아주 조용히 거룩함에 합당한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음을 통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느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말씀하시자  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한다.  “ 시몬 바르요나di,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성요한은 우리는 성령에 의해 모든 것을 알게 될것이라고 말한다. “ 그러나 여러분은 그 거룩하신 분에게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참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성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바로 우리의 생각 안으로 들어오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해서 이러한 생각을 하는 자격이 우리 자신에게서 났다고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자격을 주셔서” 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거룩한 바램을 일깨우신다.  “리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티아디라 출신으로 자색옷감 장수였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  주께서는 그 여자의 마음을 열어 바울로의 말을 귀담아 듣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서와 교회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조용한 가운데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고  가르친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듣는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릎꿇고 묵상하거나  성체앞에서 당신을 찬미할 때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말씀하신다.  우리의 생각을 산만케 하는 것들이 흘러갈때 하느님께서 우리정신에 들어 오신다.  그리고  유혹을 이길수 있도록 거룩한 생각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다.  모든 역경을 인내하려는 바램을 우리안에  불러 일으키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지성을 밝히시고 우리의 의지를 일깨우시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신다.   그것이  우리에게 기도중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이다.  만일 우리가  때때로 쉬면서 묵상하지 않고  끊임없는  말로 기도를 계속 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불어 넣으시기 원하시는  생각과 바램을 질식시키게 될 것이다.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 내 안에서  하느님의 왕국을 체험했음을 알고 있으며 우리의 주인님은 영혼을 가르치시기 위해 스승이나 책이 필요한것이 아니다.  스승중에 스승께서는 소리없이 가르치시므로 나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본적이 없으면서도 그분이 내안에 계심을 알고 항상 나를 안내하시고 생각을 불러 일으키심을 알고 있다.  단지 내가 그것이 필요할 때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빛을 나에게 밝히신다. 대개 그것은 기도중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중에 일어 나곤한다.

 

그렇다고 우리는 단지 듣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이 멍한채로 하느님의 말씀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보와 같은 짓이다.   그것이 아니라, 기도는 사랑의 대화이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를 움직이실 때  우리의 말을 시작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현존을 훈련하기 위한 한 방법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교류하시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인식하는 것이다.

 <Catholic Exchange 에서 :역:wisdom>


4.jpg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00 성모님을 그리워하며... 2013.07.13 11524
99 오소서, 성령이여! 2013.07.13 12384
98 성체를 받아 모심에... 2013.07.12 11468
97 하느님 품안으로... 2013.07.12 11612
96 영혼들의 기도 2013.07.12 9852
95 사랑하올 성부여, 2013.07.10 11754
94 하늘에 계신 성부여, 2013.07.10 11887
» 하느님은 언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가? 2014.11.23 10151
92 다섯째 계명, 살인하지 마라 – 낙태 2 2014.11.23 10710
91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 모두는 나에게로 오너라. 2014.11.23 11791
90 다섯째 계명, 살인하지 마라 – 낙태 1 2014.11.23 11658
89 첫 토요일 신심 미사의 위대한 약속 file 2014.06.02 14593
88 당신을 배반한 자가 저입니까? 주님... 4월 16일 (수) 메주고리예 강론 file 2014.05.28 10572
87 성모 마리아, 거룩한 이름이시여... file 2014.05.28 18101
86 1- 왜 첫토요일을 지켜야 하는가 file 2014.05.26 11883
85 예수님,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해 주소서 - 4월 15일 (화) 메주고리예 강론 file 2014.05.16 9464
84 하느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셨을까? - 4월 11일 (금) 메주고리예 강론 file 2014.05.12 11437
83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메주고리예 금요일 저녁예절 강론 file 2014.04.25 11576
82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게 해주신 주님... 메주고리예의 성목요일 미사 강론 file 2014.04.19 13813
81 우리가 꼭 믿고 신뢰해야 할 것... 메주고리예 강론 (3월 28일) file 2014.04.16 14988
bot_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