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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께서 분명히 제 곁에 계시다는 것 외에는

제게는 아무런 도움도 없사오니,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성폭행으로 임신한 수녀의 편지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1992년도에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한 수녀에게 있었던 슬픈 이야기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군인들에게 강간 당하고 임신을 하게 된 수녀가 원장 수녀에게 보낸 이 편지는 그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과 전쟁의 잔혹함을 말해주고 있다. 사탄은 이 수녀를 선택하여,  이 시대에도 하느님께 대한 욥의 믿음과 신뢰가 존재하는지를 시험하였으나,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믿음과 신뢰는 어떤 어려움이 속에서도 변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한 믿음은 메주고리예 성모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이기도 하다. )

 

"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저는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동료 수녀들과 제가 강간당한 일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이 편지를 올립니다.   그것은 저를 부르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겠다고 한 서약을 받아주신 그분 외에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너무나 잔혹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겪고 있는 이 암담한 심정과 고통은 한 여자로서 겪은 치욕스러운 일만을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를 당신의 영원한 배우자로 선택하신 하느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셨을 이 엄청난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제 삶의 한 부분에 간직하는 것이 지금의 제게는 가장 큰 고통이랍니다.

 

불과 며칠 전, 저는 가르멜 수도사들의 대화록을 읽으며, 저도 순교자로 죽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주님께서는 제 기도를 이렇게 빨리 들어주셨습니다. 이 전쟁과 군인들은 제가 소망하던 영원한 계획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10대 시절의 제 일기장에 “나는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으며 또 그 누구도 나에게 속하지 않는다.”라고 쓴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느 날, 밤  군인들 중에 저를 강제로 끌고 가서 자신의 소유물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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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이 고통의 신비 속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이들을 용서하는 수도자의 길을 제게 허락하셨습니다.  

  

 
그 암흑이 지나가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 생각난 것은 올리브 동산에서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리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내 삶의 희망이었던 성소의 길에서 나를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게 하셨는지, 그리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낯선 길을 통해 어떤 소명의 길로 인도하실 지를 저 자신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수녀원 옆에 있던 수도원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성호를 그으며 “이 시간 골고타 산에서는 참되신 파스카의 양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의 죗값을 치르고 계신다네” 라는 미사 성가를 마음속으로 불렀습니다.


원장 수녀님, 주님이 겪으신 그 고통에 제 생명을 바치겠다고 한 수없이 많은 맹세와 제가 견디어야 하는 이 고통과 모욕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주님, 당신께서 분명히 제 곁에 계시다는 것 외에는 제게는 아무런 도움도 없사오니, 당신의 뜻을 제게 이루소서.” 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고 상처받은 수 백만 동포들의 아픔에 저 자신도 함께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제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저에게 허락된 이 모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원장 수녀님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저의 이 아픔과 고통을 다른 이들의 아픔과 더불어, 불명의 강간범들이 저지르는 죄에 대해 대신 속죄하고,  전쟁 중인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바치겠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만행을 저지른, 그 사람들에 의해 살해당한 제 두 오빠를 생각하면서 눈물이 마르도록 울었으나 제게 이런 고통이 닥치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습니다. 우리 수녀원에는 매일 같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한 추위와 배고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절망하는 모습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는 18세 소녀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치욕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는 그 소녀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전쟁 피해자들을 두고 한 말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 저는 너무나 안일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도 더러운 힘에 의하여 비참하게 부서진 육체와 영혼까지도 약탈당해야 했던 수많은 내 나라 여인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그들은 제가 겪은 이들을 통해 저 자신도 가장 비천하고 소외당하는 이들과 함께 있으며 저의 가난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 격려와 위로를 믿어 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고통의 신비 속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용서하는 수도자의 길을 제게 허락하셨습니다. 전쟁으로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는 이 백성들을 구원과 자유가 있는 빛으로 인도하시고자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제가 로마에서 공부할 때 한 교수님께서 ‘Alesej Mislovic'의 시를 읽어 주셨습니다. “너는 빛 있는 쪽에서 살도록 선택받았으니 죽어서는 안 된다.” 제가 세르비아인들에게 강간당하고 절망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그 날 밤, 그 시는 제 영혼의 향유같이 마음속에 끊임없이 맴돌았습니다.


원장 수녀님, 이제 꿈같았던 악몽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렵니다. 수녀님께서 저에게 위로의 전화를 주시며 제 태중에 강제로 심어진 그 생명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으셨을 때, 제 대답이 없자 수녀님의 음성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해야 할 결정에 대하여 원장 수녀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싶었으며, 이제는 제가 가야 할 길을 정했기에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제 태중의 아기는 다른 사람이 아닌 제 자식이며, 저는 그 아이의 엄마입니다. 비록 제가 바라거나 원해서 얻은 생명은 아니더라도 그 아기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제 태중에 있는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한 식물을 그 뿌리로부터 떼어 넣을 수가 없습니다. 신비로운 섭리에 의하여 땅에 심어진 곡식은 뿌려진 그곳에서 자라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아기와 함께 제가 사랑하는 이 수녀원을 떠나겠습니다. 비록 폭력으로 잉태되었지만 태어날 제 아이에게는 오직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만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이 아이는 용서야말로 거룩하신 그분을 영광스럽고 거룩하게 함을 증거 하는 아이로 자랄 것입니다. 아직은 아기와 제가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가장 큰 기쁨과 소망을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게 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다시 또 제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그분의 섭리를 믿고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함께 다른 여인들이 일할 때 걸치는 낡은 앞치마와 나막신을 신고 산림지대에 있는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하며 가난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파괴하고 있는 전쟁과 증오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상처받은 이들의 평화를 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치며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수녀님께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저를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고 특히 어려운 질문들을 삼가 해준 동료 수녀님들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

 

(엄마 수녀와 아기의 최근 소식 ; 이 체험기를 쓴 수녀와 아기는  수녀원으로 돌아가 함께 살고 있다. 그 수녀원의 원장 수녀께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 전쟁중에 이 수녀에게  있었던 모든 사실을 알리고 함께 살 수 있도록 한 청원이 받아 들여 졌다. 이 아기는 지금 수녀원에서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엄마 수녀는 평생의 소원대로 다시 수녀복을 입고 수도원 생활을 하고 있다. )

 

(2001년 5월 평화의 모후 선교회 발행 '메주고리예' 제3호에서)

 


(우리는 전쟁이 만든 이 가증스러운 범죄 때문에 인생과 신앙의 소명을 송두리째 파괴당한 이 수녀의 이야기에서 메주고리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주시는 메시지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볼 수 있다. 성모님의 메시지를 따라 산다는 것은 천 배 이상의 열매를 맺는 씨앗 하나를 심는 일이다. (웨인 와이블의 Final Harvest – ‘추수’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