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한 걸음 더 -구약성경의 기도

 

이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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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오랜 자료 층에는 ‘기도’라는 용어가 없습니다. 성경에 등장 하는 사람들은 단지 “나는 하느님을 부를 것이다.” “나는 하느님께 말할 것이다.” 또는 “하느님을 찬미한다. 하느님께 탄원한다. 호소한다. 구한다. 묻는다.” 등과 같은 특정 어휘를 사용합니다. 구약성경이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의 결정적 요소는 오직 이런 반응(응답) 안에서만 발견되므로, 인간의 응답은 구약성경의 기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모든 시대의 히브리인이 바친 시편 기도야말로 하느님의 개입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의 인간은 인간 존재와 만물의 창조주가 곧 하느님이심을 잊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현존하는 분이시기에 성경의 인간은 아주 작은 일에 있어서까지도 하느님과 연관 지어 생각할 줄 알았습니다. 열정과 슬픔, 사랑과 미움을 느끼며 때로는 사경을 헤매는 질병으로 신음하는가 하면, 때로는 활력이 넘쳐 콧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실존 상황을 체험하는 인간은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 신뢰를 두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의 기도

 

일반적으로 모세오경과 역사서, 그리고 예언서에 기록된 기도는 백성을 위한 중재기도일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탈출 33,11) 하느님과 인간의 솔직한 대화로 나타납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손꼽는 아브라함의 기도는 순명이 특징입니다. 그는 하느님이 개입하실 때마다 늘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자세로 응답합니다. 반면에 거리낌 없이 청원과 탄식의 기도도 합니다.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창세 15,2-3).

 

더 감명 깊은 모습은 그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보다 더 강력한 신뢰로 그분과의 거리감을 극복하고 있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창세 18,27) 하면서 다수가 행하는 악과 소수가 행하는 정의 사이에서 하느님은 어느 것을 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실지 묻습니다(창세 18,23-25 참조). 그는 고집스럽지만 타인을 위해 중재기도를 하는 것인데, 이 정도로 대담하고 용기 있는 기도는 오직 깊은 신앙에서 나옵니다.

 

또 다른 전형으로서 모세야말로 하느님과 공동체 사이에서 중개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금송아지 사건에서 하느님과 모세 사이에 일어난 갈등은 극적인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느님의 사랑(이 민족은 당신의 백성입니다.)과 성실(약속에 대한 기억)과 영광(만일 당신께 속한 백성이 당신께 버림받는다면 다른 백성이 무엇이라 비웃겠습니까?)에 호소합니다(탈출 32,1-35 참조).

 

결국 모세의 기도가 이루어져 외관상으로는 하느님이 변화되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세가 ‘분노의 하느님’에서 ‘용서의 하느님’의 이미지로 기도의 관점을 전환하고 자신의 견해를 바꾸어 기도한 데 초점이 있습니다. 기도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지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모세는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고 용서하는 하느님의 참 모습을 발견한 것이며, 백성의 죄가 무엇인지 올바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욥의 기도

 

기도하는 사람은 종종 인간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체험을 하는 동시에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는 이중으로 겪는 소외입니다. 사랑하는 백성에게 그리고 모든 걸 포기하고 섬기던 하느님을 향해 느끼는 이중의 외로움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여야 했습니다(예레 15,10).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불평도 하고 심지어 자기 성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20,7 이하 참조).

 

그러나 때때로 하느님은 입장이 다르신 것 같아서 고독한 이 예언자는 기도인 동시에 하느님과 논쟁을 합니다. “저들이 저에게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어디에 있나? 내려와 보시라지!’”(17,15) 예레미야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주리라.”(1,8) 하셨던 하느님의 약속에 목을 매지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15,18) 하며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예레미야가 말한 ‘가짜 시냇물’은 욥기 6,15-20을 읽을 때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욥은 “내 형제들은 개울처럼 나를 배신하였다네, 물이 넘쳐흐르던 개울 바닥처럼”이라며 씁쓸함을 표현합니다.

 

겨울 장마철(우기)에는 풍부하던 물이 여름철(건기)에는 메말라버리는 도랑처럼, 춥고 목마른 순간에 자신이 버림을 받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분명 예레미야와 욥은 자신의 입장에서 매우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며 여기서 하느님이 이 둘에게 이루어주고자 하신 정의가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하느님은 당신 종들이 획기적 전환점에 도달하길 바라십니다. 곧 회개하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무죄한 종들의 회개라니! 회개는 심오한 것으로서 하느님을 생각하는 측면에서는 신학적이요 인간 행위의 측면에서는 윤리적입니다. 그러나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기도하는 일은 위기를 통해 인간을 회심으로 이끕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예레미야나 욥은 삶의 동기를 얻고 강한 신뢰와 기쁨을 체험합니다. 하느님과 논쟁하면서 진실로 모든 걸 포기하려 했다가도 “뼛속에 가두어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타오름”(예레 20,9)을 느낍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계심을 …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19,25-26)는 열망이 불끈 솟아오릅니다.

 

극심한 고통은 인간을 하느님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힘이 있지만, 고통의 언어인 불평과 탄식의 기도는 하느님을 끈질기게 붙드는 더 강력한 힘입니다. 이렇게 하느님만을 굳게 붙드는 수많은 노고 속에서 고통 받는 이는 귀로만 듣고 생각으로만 상상하던 하느님으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으로 옮아갑니다. 곧 기도 안에서 이성을 뛰어넘는 하느님 신비에 대한 오해가 바로 잡히고, 그 신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42,5).

 

 

현인들의 기도

 

욥의 기도와 함께 잠언, 코헬렛, 집회서 등 지혜문헌에서는 현인들의 기도를 만납니다. 기도에 관해 성찰한 잠언, 코헬렛, 집회서 본문은 기도와 기도하는사람의 도덕적이며 종교적 품행 사이의 일치를 부각시킵니다. 잠언 30,7-9에서 아구르는 부유하면 무관심과 오만함으로, 가난하면 원망과 분개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질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생존을 위한 양식만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코헬렛은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 너의 말은 모름지기 적어야 한다.”(5,1-2)고 충고합니다. 집회서 역시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많이 하지 말고 기도할 때 말을 되풀이하지 마라.”(7,14)고 충고하는데, 이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하느님 앞에’ 곧 그분의 지상 거처인 성전에 있기는 하지만 하느님과의 대화는 신비로운 측면을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거리가 있음을 충고하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을 경외하는 일만이 지혜와 기도의 궁극적 목적임을 가르칩니다.

 

구약성경의 기도는 계시처럼 대화 형태로 구성됩니다. 하느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듣고 응답합니다. 하느님이 행동하시면 인간은 그에 협력합니다.

 

성경의 기도는 인격적입니다. 하느님은 ‘지금 여기’에 계신 분, 움직이는 분으로 체험됩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친밀한 관계로 인격 대 인격의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도는 결코 독백이 아니며 자아의 내면 깊은 곳에 잠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 자신이 아닌 다른 분 곧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초월과 내재, 멂과 가까움, 신뢰와 두려움이라는 양극 사이를 동시에 오가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의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곧 삶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도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전 존재, 곧 나뉠 수 없는 자신의 전 인격을 활용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필요와 영적 필요 모두 하나가 됩니다. 성경의 기도는 영적 유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삶 전체를 위해 바치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도에 대해서는 P. 로싸노와 G. 라바시, A. 지를란다가 편집한 “새로운 성경신학사전”(임승필 외 공역, 바오로딸출판사)의 ‘기도’(187-212)를 참조하세요[필자 주].

 

 

이명기 마리아 - 성심수녀회 소속 수녀. 구약성경신학을 전공하였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교수로 인간학과 영성을 가르치며, 경향잡지 편집자문위원이다.

 

[경향잡지, 2010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