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영적 여정이 지닌 세 가지 의미

영적 여정은 하느님 안에서 참 자유인이 되는 과정

 

이번 호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가르치는 인간의 영적 여정이 담고 있는 내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숙고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찰을 통해 그 여정이 간직한 깊은 신비와 의미를 재조명해볼 수 있습니다.


감각적 삶에서 영적 삶으로의 이행 

우선, 성인이 가르치는 이 영적 여정은 감각에서 영 또는 감각적 삶에서 영적 삶으로의 이행 과정을 말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두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를 배제하지 않고 영적 전망 안에서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육체적인 영역에 속하는 감각 역시 인간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감각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꾸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게 하고 제반 사물, 사건이 간직한 진리를 꿰뚫어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영적이고 초월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각을 인간 홀리는 ‘요정’이라 불렀습니다. 감각은 인간으로 하여금 육체적 욕구에만 만족하고 안주하도록 붙잡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보고 듣고 느끼는 육체적 쾌락에만 머물게 함으로써 그것이 전부인 양 착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천상 본향을 향해 날아가야 할 인간을 이 세상에만 안주하게 만듭니다

성인은 그러한 인간 감각들이 더 고차원적인 영적 영역으로 방향 지어지고 승화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럼으로써 그 감각들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성인이 말하는 하느님과의 친교로 인도하는 길은 ‘감각의 길’이 아니라 ‘영의 길’입니다.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의 길은 소유의 길이 아닌 가난과 비움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감각적, 육체적 차원에 대한 부정이나 거부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능력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옛 인간에서 새 인간으로 

성인이 말하는 감각적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의 이행 과정은 사도 바오로가 자신의 여러 서간을 통해 자주 언급한 ‘새 인간’의 탄생 과정과 궤를 같이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사상은 소위 ‘의화론’으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인간은 죄인에서 의인으로 거듭나며 율법 아래에서 죄의 노예로 살던 ‘옛 인간’에서 은총에 따라 사는 ‘새 인간’으로 탄생합니다. 사도는 이 전망에서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인간을 ‘옛 인간’,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의 인간을 ‘새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존재로 변모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가르치는 인간의 영적 여정은 그리스도와의 만남, 그리고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 발전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옛 인간’의 죽음과 ‘새 인간’의 탄생,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루어지는 영적 변모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말하는 옛 인간은 첫 아담에 상응하는 상태로서 자신의 욕구에 따라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반면, 새 인간은 둘째 아담, 즉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자 그분의 은총에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참 자유인이 되는 과정 

십자가의 성 요한은 밤의 정화를 통해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을 ‘참 자유인이 되는 길’로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새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성소는 ‘자유를 향한 성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오로 역시 다음과 같이 가르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갈라 5,1). 

십자가의 성 요한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전망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예속과 집착을 극복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하느님 안에서 참된 자유인으로 거듭나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종살이는 자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영혼은 거룩한 일치에서 이르게 되는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자유란 노예의 마음처럼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에는 자리 잡을 수 없고, 오히려 합당한 이들의 마음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에 머뭅니다”(「가르멜의 산길」 146). 

성인에게 있어서 자유의 원천은 ‘하느님과의 합일’입니다. 그래서 합일로 이끌어 주는 모든 것은 또한 자유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인은 “영혼이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다면 거룩한 일치에 이르는 자유를 얻지 못할 것”(「가르멜의 산길」 1114)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여정에 진보함으로써 참 자유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모든 형태의 ‘집착’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목적에 부합해서 선용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고 자라납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자유가 우리 존재의 목적이신 하느님께로 우리를 이끌어줄 때 그 자유는 점점 충만해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자유, 하느님 안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자유, 선을 행하는 자유, 바로 여기에 자유의 참된 의미가 있고 그렇게 자유를 선용할 때 우리의 자유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
평화신문, 2015726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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