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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신앙고백, ‘성호경’ 
-전삼용 요셉 신부님-
 
얼마 전 우연치 않게 한 신부님의 아버님을 뵙고 식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그 아버님은 성체 신심이 특별하신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그 아버님은 신앙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신을 부정하며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었고 그렇게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하루는 일하시는 곳에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아버님은 그 화재를 직접적으로 입으셨고 3도 화상으로 죽은 것으로 판명이 되어 병원 영안실에 넣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영안실에 넣으려는 순간 일하는 사람들이 숨소리를 듣고 혹시 살아있는 것이 아니냐고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기억이 없으시다고 합니다. 깨어보니 병원 침대 위에 뉘여 있었습니다. 입도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코와 귀도 화재로 사라져버린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 상태였습니다. 


그 병원이 수원에 있는 가톨릭 병원이어서 수녀님이 “혹시 영성체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어 보셨고 아버님은 말씀을 하실 수가 없으셔서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입도 벌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성체를 영하시려고 하신 것일까요? 아버님은 그 때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영성체를 하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잊고 사셨던 기도를 다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성모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모송을 바치면 주위의 사람들이 주님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들이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제대로 성호를 그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처럼 방해하던 무리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이때부터 성호를 긋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깊게 인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밤새 기도를 하시는데 온 병원에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 분은 어떻게 걷고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하시며, 사람들을 깨워 피하라고 하였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옆 병실에 입원해 계신 모 주교님을 찾아갔는데 그 주교님은 일어나셨습니다. 불이 났다고 피하라는 그 아버님의 말에  “하느님께서 무언가 일을 하시려는 모양이네.” 하시며 아버님께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불은 그 아버님께만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아버님은 기적을 체험하십니다.  화상이 다 벗겨져 새살이 돋아난 것뿐만 아니라 없어졌던 코와 귀까지도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그렇게 아침 미사에 당당히 내려가 성체를 영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그 주교님께서 다 목격하셨습니다. 그 아버님보다 뒤에서 있다가 더 적게 화상을 입으셨던 분들이  지금까지 다 불구자로 계신 것을 보면 아버님의 기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아침미사에서 성체를 영하고 돌아왔더니 온 병원이 난리가 났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버님께 와서 혹시 여기 누워있던 환자 못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누구도 하룻밤에 그렇게 온전해진 아버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고, 그분의 아버님, 즉 팔순이 훨씬 넘으신 할아버지께서는  그 일이 있어서 아들 얼굴이 더 잘생겨졌다고 농담까지 하셨습니다.
 

아들 신부는 우연히 아버지께 이런 기적이 있었던 병원에서 봉사를 하다가 지금도 실제로 이 사실을 기억하고 계신 수녀님과 이야기 할 수 있었고  그것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이후 바뀐 것은 아버님의 외모만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그 전에 냉담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열심한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성체신심은 말할 것도 없고 성호경에 대한 특별한 신심이 생기셨습니다. 그 분은 성호경에 가톨릭의 모든 신비가 다 들어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성체를 아무 감흥 없이 일상적으로 받아 모시는 이유는 아무 감흥 없이 성호를 긋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고 계셨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님은 누구와 있건 간에 삼종기도와 식사 전후기도 할 때 성호를 크게 그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고 하느님을 배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당에 나오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성호를 긋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른다고 배교하는 것이고 심하게는 하느님을 부끄러워하면서 성당에 나와서는 성체를 모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독성죄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버님은 건설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초창기 규모가 작을 때였는데 100억이 넘는 입찰에 도전을 해 보셨습니다. 당대 대기업 건설 회사들이 수주를 따내기 위해 입찰을 넣은 상태라 현실적으로는 입찰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아버님은 입찰이 이루어지는 동안 계속 묵주기도를 바치셨고  점심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호를 긋고 삼종기도를 먼저 바치시고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가오더니 서류를 좀 보여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서류를 주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버님의 회사가 그 일을 따내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방금 전에 서류를 달라고 하셨던 분이 중앙에 앉아계셨다고 합니다. 그 분은 누구도 그런 곳에서 성호를 긋고 식사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하며 그렇게 신앙이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하여 그 분께 일을 맡기기로 결정 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성호 긋는 것 덕분에 사업은 크게 번창하였고 전국 몇 위 안에 드는 건설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일에 본의 아니게 관여되면서 사업을 접고 빚더미에 앉아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님은 또 다시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하셨습니다.  산에 소주 한 병과 극약 한 봉지를 들고 올라가셨습니다.  우선 소주를 좀 마시고 약을 먹으려는 순간 밥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고 합니다.  그 때 문득 처자식도 있고 이런 신앙을 갖도록 기적을 일으켜 주신 주님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다시 산을 내려오셨습니다.  성호가 또 다시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아버님은 사업이 번창하면서 소홀하게 되었던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사업을 실패하게 한 것임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버님은 당신의 대자가 된 전직 목사님 4분을 포함하여  지금도 한 해에 10명 이상을 전교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성당에 다니라고 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님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디에 가든, 누구와 있든 항상 성호를 긋고 식사를 하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묻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저의 출신 본당 선교 왕이 생각났습니다. 그 분은 옷가게를 하시는데 들어오는 손님마다 “찬미 예수님!”하고 인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뿐인데도 어떤 때는 일 년에 40분이나 선교를 하셨습니다. 다만 자신이 가톨릭교회의 신앙인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내는 것뿐인데 관심이 있었어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좋은 연결 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당신을 부끄러워하면 마지막 날 아버지 앞에서 우리도 부끄럽게 여기겠다고 하십니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성호를 긋는 것이 사실은 작지만 큰 신앙고백이고 선교의 시작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순교자 이냐시오 성인도  큰 순교를 하기 이전에 이런 작은 증거의 삶을 사셨음을 의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큰 업적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떳떳하게 성호를 긋고  가톨릭 신앙인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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